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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2) 운수 나쁜 날, 그러나 기분 좋은 날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8 조회수662 추천수4 반대(0) 신고

 

 

어제 정오쯤 되어 일산에 갔다.

아들이 그곳에 있는 바이킹이라는 부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자고 해서다.

공짜 쿠폰이 하나 있으니 한사람 값만 내면 된다고 해서 점심 먹고 호수공원에도 가보고 드라이브도 할겸 해서 가자고 하길래 따라나섰다.

 

거의 일산에 다 와 가는데, 할인받을 수 있는 멤버쉽카드라나 무슨 카드를 안가지고 왔다고 아들이 툴툴거리더니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또 시동이 안걸린다고 한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카센터에서 사람을 불렀는데 제너레이터(발전기라고 함)가 망가졌다고 했다.

교체하는데 28만원이라고 해서 그대로 보냈다고 했다.

우선 점심이나 먹고 나서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단골정비소로 견인해 가야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는데, 밥맛이 날리도 없지만 계속 얼굴이 부어있는 아들은 비싼 값이니 비싼 해산물을 먹으라고 종주먹을 쳐댄다.

저녁쿠폰을 점심쿠폰으로 착각했다고, 제값내고 먹는 비싼 음식이니 싸구려만 갖다 먹지말고 좀 값나가는 해산물을  먹으라는 것이다.

나쁜 일은 연속해서 일어나는 속성이 있나보다.

아무리 그렇다고 별로 땡기지도 않는 해산물을 억지로 먹을 수야 없지 않는가.

 

10% 할인되는 쿠폰 빠치고 와,

공짜 쿠폰 못 써먹고 제값 내게 돼,

차 망가져 견인하게 돼,

부속품 교체하려면 돈 들어......

아직 젊어 그런지 아들은 참을성이 부족하다.

견인비에 부속 교체비에 수십만원 날라가겠다고 끙끙 앓는 소리를 한다.

고속도로에서 이런 일 생겨 차가 서 버렸으면 어떡했을거냐고, 다행인 줄 알라고 해도 계속 그러길래 모든 경비 내가 다 내줄 테니 그만 하라고 했더니 그런 뜻이 아니잖냐고 볼멘 소리를 한다. 

우리 아들은 참 한 가지 신통한 게 부모 돈이든 자기 돈이든 다 함께 아까워할 줄 아는 점이다.

딸내미는 부모 돈이든  제 돈이든  도무지 귀중한 줄을 모르는데......

아무튼 비싼 음식 참으로 맛없게 먹은 날이었다.

 

보험회사에서 두 사람이 나왔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면 큰차는 들어 올 수 없어 작은 차 큰차 해서 두 대가 온 거라고 한다.

작은 차로 우리 차를 대로변에 끌어 내놓고 커다란 견인차에 실었다.

 

난생 처음 견인차를  타고 인천 계양구에 있다는 단골정비소를 향해 달리는데, 보험회사에서 나온 운전사 아저씨가 참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사람이었다.

서글서글하고 친절하고 그래서 달리는 내내 많은 이야기를 하며 갔다.

견인차에 몸을 싣고 달리면서 한강을 바라볼 줄이야......

한데 그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정비소엔 젊은 남자 둘, 소랑소랑하게 애송이 티가 나는 남자 둘, 네 명의 기술자가 여러 대의 차를 고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유니폼은 검은 기름때로 범벅이 되고 얼굴도 손도 팔뚝도 검은 색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기름밥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머리에서 운동화까지 정말 온통 검은 기름으로 범벅이다.

 

왜 이렇게 귀중하고 소중한 에너지를 내는 기름은 검은 색일까?

영화 자이언트에서의 <제임스 딘>이 떠올랐다.

검은 석유가 콸콸콸.......

우뚝우뚝 솟아오르는 시추탑 시추탑들......

검은 기름덩이는 그렇게 부(副)를 이루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에너지로 세상을 편리하게 해주는데 왜 그렇게 빛깔은 검은색인가. 좀 밝은색이었으면 보기에 좋았을텐데....

이 세상에 다 좋은 것은 없나 보다.

 

카센터의 의자들은 모두  검은 기름때로 더럽혀져 있어 어디 한군데 앉을 곳이 없었다.

하필이면 흰바지를 입고 있어 검은 기름이 묻으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밖에서 두 시간여를 계속 서있자니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나중엔 너무 다리가 아파 그냥 의자에 앉아버렸다.

 

그런데 기름을 뒤집어 쓴 그 젊은이들이 너무나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차를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남자 중에 한 사람이 사장이라고 한다.

처음엔 20대 중반으로 봤는데, 아니라고 한다.

아들 말에 의하면 결혼도 했고 삼십은 넘었다고 한다.

사장이 너무 좋아 단골이 되었다고 하는데, 인물도 좋고 예의도 깍듯하고 겸손하고 순수해 보였다.

첫눈에도 호감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검은 기름으로 온통 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에서 그렇게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열심히 성실히 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했다.

깨끗한 곳에서 깨끗한 모습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치열한 아름다움이었다.

시인 김수영이 심오한 한 줄의 시보다 생계를 위해 양계를 했던 일을 떠올리며, 밥 한 그릇이 될 수 없는 지식과 지성은 아무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밥굶을 걱정 없는 확고한 기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얼마 전에 기독교방송에서 들었던 장경동 목사의 설교가 생각났다.

이 세상에 있는 의사들 전부 합해도 목사 한 사람만 못하다고.

왜냐면 의사는 육신의 병을 고치지만 목사는 영혼의 병을 고치기 때문이라고.

비유를 하자면 의사는 현상이고 목사는 본질이라고, 왜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지 못하냐고 하던 장목사의 설교......

의사가 고치는 사람의 수명은 고작 몇 십년이지만, 목사가 고치는 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왜 똑똑한 자식은 판검사 시키고, 그 다음으로 똑똑한 자식은 의사 시키고, 젤 션찮은 자식 사람 만들어보자고 만일 신학교 보낸다면 그래서야 목사의 위치가 제대로 서겠냐고 하던 말.

제일 똑똑한 자식을 우선 신학교에 보내야지 영혼을 치료해야 하는 목사의 질이 높아지지 않겠냐고 늘 재미있는 설교로 인기가 있는 장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그냥 웃고 말았었는데, 문득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직업 좋은 일이 있다고 이 세상 사람 모두 다 똑같은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좋은 직업이란 게 특별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만일 몸 편하게 돈 많이 벌고 남에게 선망받는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라면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는 직업이란 없다.

나름대로 다 알고 보면 직업마다 남 모르는 애환이 있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기 일에 얼마나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능력과 상황에 따라 열심히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라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세상에서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만으로도 안정적이지 않는가.

견인차를 타고 오면서 그 아저씨가 참 좋아보여서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 했더니 "아휴! 힘들어요" 하던 말에는 그래도 굴지의 보험회사에 다니는 그 아저씨는 생계를 근심하지는 않아도 되고 보장이 되는 직장이니 즐거운 소리로 들렸었다.

 

내가 20대 초반에 동생들은 많고 집안 경제는 어렵던 시절,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도통 취직할 곳이 없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잡지에 글을 투고하여 뽑혀 나와도, 심사평에서 칭찬을 받았어도, 그 알량한 재주가 돈을 버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었던 기억이다.

김수영같은 대 시인도 생계를 위하여 시쓰기를 접고 닭을 키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나와 내 가족을 책임지고 보살피며 성실히 임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며, 가장 보람있는 일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어제 처음 가 본 정비소에서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두 젊은 남자의 검은 기름으로 범벅이 된 그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체구가 작은 스무살이 될락 말락한 두 젊은이도 어찌나 열심히 일하던지 그 모습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늘어갈 그들 미래의 청사진을 보는 듯 해 공연히 대견해 지는 마음이었다.

아마 그 아이들도 십여년쯤 지나면 그 카센터의 젊은 사장처럼 든든한 가장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하느님은 저마다에게 달란트를 주시는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또한 나역시 돈 한푼 안되는 무용지물이었던 알량한 그 옛날의 글쓰기가 이제 나이 먹어 할 일 없는 지금, 이렇게 굿뉴스 게시판이란 곳에서 글을 쓰게 하여 스스로를 위로하게 하니 이 세상에 무용지물인 것은 없는가 보다.

 

고친 차를 타고 오면서, 움직이지 않던 차가 그렇게 쌩쌩 달리는 걸 보면서 이 세상 모든 곳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누구라 할 것 없는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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