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괴짜수녀일기] < 2 > 임시번호판 소동 /이호자 수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9 조회수806 추천수12 반대(0) 신고

 

 

 

임시번호판 소동


   우리 수녀원과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원과는 백 미터 거리도 안 된다. 매일 아침 이 길을 걸어 성당에 가는데, 수녀원 문지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강아지까지도 우리들 뒤를 따라 성당에 가는 게 일과처럼 되어 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 골목에는 넓은 정원을 가진 집이 있었는데 이 집은 좀처럼 정원을 가꾸지 않아 침침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유령의 집’이라는 별명까지 붙여놓았다. 가끔 주인인 듯한 남자와 그 딸로 보이는 아이가 대문 앞에 나와 줄넘기를 하곤 하였는데 그 주인 남자의 인상이 음침하고 험악하게 보여 내심으로 혹시 경찰이나 정보기관 같은 곳에 근무하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세상 분위기가 험악했었기에 그런 쪽에 근무하는 이들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날도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로 그 집 담 옆에 번들번들 광이 나는 새 승용차 하나가 세워져 있었고 거기 붙어 있는 작은 번호판에는 ‘화성경찰서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이 경찰관, 그것도 경찰서장이었구나!”


   나는 속으로 나의 뛰어난 분별력과 선견지명을 확인한 것 같아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가던 요셉 수녀님에게 얼른 다가가서 자신 있게 속삭였다. “수녀님! 이 집 주인 직업이 뭔지 알았어. 화성경찰서장이야. 어째 인상이 험악했더니 경찰이었구먼.”


   “뭐? 어떻게 알았는데?”

   그 수녀님은 뭔가 미심쩍다는 투로 묻는 것이었다.

   “차에 붙어 있잖아, 화성경찰서장이라고.”

   “흥, 화성경찰서장도 쌔비릿구먼(‘흔해빠졌다’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


   수녀원으로 돌아와 묵상시간이 끝나고 둘러앉은 아침 식탁에서 요셉 수녀님의 재빠른 신고(?)로 한바탕 웃음바다가 이루어졌다. 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너무나 중요한,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아침에 보았던 것은 새 자동차에 달아주는 임시 번호판이었고 거기에는 자동차 출고 지역의 모모 관청 책임자의 직함이 찍힌다는 사실을.


   그 집 사람들은 그 후 어디론지 이사를 가고 지금은 그 자리에 3층 빌라가 우뚝 서 있다. 물론 무성하던 오동나무마저 베어졌고 그때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임시번호표를 단 차만 보면 그날의 촌극이 연상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예수님, 누군가가 가르쳐줘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인의 직함을 만인 앞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붙은 당신의 명패는 예외가 아닙니까? ‘INRI' - 유다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이것은 비록 악당들의 손으로 씌어진 것이지만 당신의 직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임시번호판이 아니라 영영세세 변함없는 진짜 직함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구요.”(R)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전 애화학교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