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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3) 백 살 잔치 / 김귀웅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9 조회수686 추천수3 반대(0) 신고

 

9월 둘째주 연중 제23주일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마르 7,31-37)

 

 

                                                                 제주도 신창성당 : 김귀웅 주임신부님

 

제주도를 보고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삼다도라고 하는데, 사실 여자는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들이라고 해야 옳다.

 

할머니들 중에서도 구십이 넘은 분들이 정말 많다.

백 살을 2~3년 남겨둔 할머니들께는 백 살 잔치를 해드리겠다고 약속도 했다.

일흔이 넘은 안나회 회장께서 스스로  "저야 아직 젊었지만" 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주도가 장수의 고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기나 먹거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한 마디로 고부간의 갈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도 전통 가옥은 ㅁ자 형태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안채와 건너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연세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 경우 부모님은 건너 채에 살면서 살림을 완전히 따로 한다. 

 

식사도 따로 해서 드시고, 빨래도 알아서 한다.

처음에는 어떻게 마당 건너에 계신 부모님께 저리 무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지나면서 보니 그것이 참 합리적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제주도 할머니들은 예전부터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이 살았다고 한다.

함께 살아도 서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

자식들에 대한 배려가 끝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죽기 전까지 일하는 습관이 건강을 지키는 첫째 비결일 것이다.

 

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능한 한 부딪칠 일을 만들지 않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고, 바로 이것이 장수의 또 다른 비결인 것 같다.

 

어제는 온 몸에 암 세포가 퍼진 87세 로사 할머니를 병문안하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할머니가 누워있기만 하면 뭐하냐고 병원주방에 내려가서 마늘을 다듬으신다. 

건너편에 누워계신 또 다른 할머니 걱정도 늘어놓으신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귀가 어두운 로사 할머니는 입을 귀에 딱 붙이고 크게 또렷하게 말하지 않으면 도통 알아듣지 못하신다. 

마늘을 다듬는다고 하셨지만 정작 눈이 침침하고 아파서 사실 오래 일을 할 수도 없으시다.

 

눈도 귀도 이제 닫혀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내 아픔에만 눈멀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진짜 눈을 가지신 것은 아닐까?

 

내 필요한 것에만 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처지를 먼저 들을 줄 아는 진짜 귀를 가진 것은 아닐까? 

 

제주도 할머니들은 그렇게 나만 바라보는 고장 난 눈과 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바라보고, 다른 이의 말을 먼저 듣는 이미 치유받은 눈과 귀를 가지신 것이 아닐까?

 

기어이 혼자 살겠다고, 혼자 살림하겠다고 하시는 할머니들의 눈과 귀는 이미 예수님의 손길이 닿은 성스러운 것이리라.

 

                       ㅡ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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