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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의 착시(錯視) / 손우배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2 조회수884 추천수9 반대(0) 신고

 

 

 

<제가 머물렀던 로스 알라모스 시청 옆의 잔디밭에 세워진 조형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는 ‘재미’의 추구가 만연하고 있다. 또한 ‘재미’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고 때로는 우상이 되곤 한다. 물론 그러한 ‘재미’를 이분법적 사고로 ‘악’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기쁨’을 ‘재미’와 혼돈하여, ‘기쁨’을 위해 ‘재미’를 추구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때론 ‘재미’만을 추구하다 그 ‘재미’에 ‘기쁨’이 가려 ‘참 기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오락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에서 너무 재미있으니 꼭 보라는 취지로 “여러분들의 1시간이 그냥 지나갑니다. 놓치지 마십시오.”라고 광고를 하였다. 한 시간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 그냥 지나가는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결국 나의 한 시간이라는 인생을 저 프로그램에 맡겨 내 소중한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처럼 그들은 인간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왜 우리는 텔레비전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와 같은 것에 몰입하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지만, 기쁘게 살고 싶지만, 그렇지 않기에, 그것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몰라 보다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행복의 착시(錯視)이다. 마치 분홍색을 빨간색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엇이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하는지, 참으로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김동인님의 “무지개”라는 단편소설에서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무지개를 찾아 나서지만 어떤 아이들같이 기왓장을 들고 무지개라며 기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참 행복은 무엇일까?

우리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복을 추구하곤 한다. 행복은 ‘재미’가 아니라 ‘기쁨’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하지 않기에 그것을 채우려 ‘재미’를 찾고는 한다. 즉, 사람들은 기쁘고 싶지만 기쁘지 않기에, ‘기쁨’이 무엇인지 몰라 비슷한 색깔의 ‘재미’로 그 ‘기쁨’의 갈망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우리는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독을 채우기 위해 ‘쾌락’과 ‘욕망’을 찾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을 기쁘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론 ‘행복’을 위해 ‘부’와 ‘명예’를 추구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게 그로인한 감정도 변하게 할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잠시나마 ‘행복’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인간의 가치와 의미 추구에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향유할 때이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참다운 응답이며,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있게 한 존재의 근원과 함께 할 때 울리는 그러한 소리이다. 인간 존재의 참다운 의미는 사랑이다. 배타적 사랑이 아닌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사랑을 향유하는 것이다.

언젠가 동료 예수회원이 다니던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수도원에 간다며 상관에게 사표를 제출했을 때, 그 상관은 “인생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살 필요는 없잖아?”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동료는 “비관적이라니요?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 갑니다.” 10년이 넘어 그 상관도 이젠 60이 되어 가는데 얼마 전 우연이 길에서 만났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수련을 받을 때 수련장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수도생활을 행복하기 위해 합니다.” 참된 크리스챤은 행복하여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인임이 행복하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 기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행복을 주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그것은 광야에 홀로 있어도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그러한 행복이며,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돌멩이를 맞으며 죽었던 스테파노는 어떻게 기쁠 수 있었는가?(사도행전 7:54-60) 그것은 참된 행복을 알았기에, 보물이 있는 밭을 알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그 땅을 사는 농부와도 같은 것이다.(마태오 13:44) 참 인생을 안다면 우리는 세상의 부질없는 욕망에 나를 채우며 행복의 독이 가득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행복은 우리 영성의 척도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러한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파키슨병으로 고통 속에 죽음을 기다리던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과 저희 이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행복이다.

오로지 주님만이 내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주실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의 ‘재미’와는 다른 성령의 열매이며, 그것은 기도를 통해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의탁할 때 느낄 수 있는 종교체험이다.


 

                                                                    <예수회 홈 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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