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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누가 크냐
작성자홍선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2 조회수739 추천수6 반대(0) 신고


누가 크냐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에서 수장이 될
사람이 청와대 전화 한마디에 사표를
내는 모습에서 보통 사람들은
비애(悲哀)감마저 든다.

신문 3면에 나오는 사건들은
더 높아지려다 미수에 그친 일들이다.

인간의 특징(特徵)은
이렇게 높아지려는데 있다.
아담이 뱀의 말을 들었던 것도,
바벨탑도 더 높아지려는 마음에서였다.

심지어 그의 제자(弟子)들까지도
마지막 성만찬에서조차,
장차 받으실 고난에 대해 말함에도
그들은 누가 크냐를 따졌었다.

높아지려는 이 욕망은
평생(平生) 우리를 괴롭힐 것이고,
또한 평생 이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그러기에,
높아지려는 욕망(慾望)은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항상 병원균처럼 잠복해 있다가
기회(機會)만 되면 또 다시
머리를 치켜세우고 수치(羞恥)를 드러낸다.






세상에는 언제나
상대적(相對的)인 두 종류 사람이 있다.

부자 아니면 가난한 사람,
날씬한 사람 아니면 뚱뚱한 사람,
그리고 지혜자나 우매자
..
그러나 그 두 종류란
결국 높아지려는 사람과
낮아지려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 기준이 바로 행복한 사람과
평생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과의 분기점이 되는 것은,
행복이란 환경(環境)적 요소가 아니라
만족(滿足)을 넘어선 ‘낮아짐’에 있기 때문이다.


‘낮아짐’이란 곧 ‘버림’을 의미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중에서도 수녀(修女)가 되려면
가장 기본적인 일이 바로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수녀 되는 과정을 통해
인생에서 버림의 참된 의미를
배우고 있다.

수녀로 처음 입원하게 되면
2년 동안 지원과 청원기를 지나고,
또 2년 동안 수련(修鍊)기에 들어간다.

그런 후에 6년 동안 유기 서원기로 들어가는 데,
이 기간 동안 수도 성소를 철저히 식별하고
3대 서원(誓願)을 익힌다.
그것은 곧 철저히 자신을 버리는 훈련이다.






첫째로 순명(順命)이다.

그들은 신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버림으로
대신(代身) 신을 얻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각을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 일로
인해 사람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며 다닌다.

우리가 왜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하는가.
사람은 눈앞만 보지만 그는 내 인생
모든 것을 보시기에 그렇다.

그래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보통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운전(運轉)하는 것과
바둑 두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바둑 둘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다가
순식간에 자멸하는 경우다.

당장은 행운(幸運)이라고 여겨지는
낚시 바늘의 미끼에 눈이 멀어
욕심(慾心)을 내느라
눈물을 흘리는 우매한 물고기처럼,

아무리 마음을 다지고 다져도
또 현실 속의 작은 행복에 눈이 멀어
아무 생각 없이 그 미끼를
또 덥석 집어 물듯이,
내 생각을 버린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둘째로 청빈(淸貧)이다.

청빈이란 ‘맑은가난’으로
더 가지려는 욕망을 자제하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한 평생 살아가면서
모두 소유물들은 내 것이 아닌
그 분의 것을 잠시 빌려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욕심 낼 필요도 없고,

또 내가 남보다 높아지려는
마음 자체가 무슨 의미(意味)가 있겠는가.

겸손(謙遜)이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낮추어 짐을 말하고,
청빈(淸貧)은 실천적 단계로
자신의 소유를 버림으로
가난한 삶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다.

중세 때 부(富) 축적 자체를
죄악시 했던 것은 청빈만이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내 생각도 청소 중이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자신도 모르게 그것들이 썩어가면서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건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외적인 일에서만 원인을 찾고 있었다.

그 쓰레기들이
소유에 욕심내게 만들었고,
자리에 연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결국 남들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을 제공했던 것이었다.






셋째로 정결(淨潔)이다.

생각을 버리고
소유를 버리는 일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바로
달콤한 감정을 쓰레기로 여기는
정결(淨潔)의 과제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 흔하게 쓰고 있지만,
이 말처럼 가장 달콤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실체도 없을 것이다.

소기의 목적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로 미혹하여
잠시 동안의 달콤한 감정에 빠져보지만,
그 강한 마취에서 깨어난 후 모든
고통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유혹당한 자의 것이 된다.






사단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호언장담하고 나서길 좋아하는 베드로를
주목(注目)하여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수 없이 쓴 맛을 보았음에도
당장이라도 아름다운 미명으로 포장된
어떠한 달콤한 감정에 중독(中毒)
되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바램들이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던가.

세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사랑을...


소유(所有)와 애정(愛情)
그리고 명예(名譽)에 대한 자신의
감정 처신(處身)이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이요 인생이 될 것이다.

수녀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과한 후에
종신(終身)서원을 준비하고 있듯이,

인생도 자신의 생각과
소유와 유혹을 다져가면서
영원한 삶을 준비(準備)하는 것이다.






주여,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신 당신의
뜻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들은 높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소유나 애정, 명예에
아무 관심(關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건보다 내 욕망(慾望)에
말씀보다 내 경험(經驗)을
진리보다 내 이익(利益)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제라도 수녀(修女)들에게
요구되어졌던,

생각과
소유 그리고
감정을 종도 날마다
다스리게 하소서
..


2006년 9월 10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 서락샘(1)투가리(1)Lovenphoto(2)Crossmap(2)카니자로(1)이해(1)
 
 
 
 
http://cafe.daum.net/ldshsa 행복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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