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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것도 팔아요?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4 조회수773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것도 팔아요? 

 

                           

 

   가을로 접어들며 농약을 치지 않는 참외들은 온갖 병들을 끌어안고 있다. 멀리서는 누런 참외가 주렁주렁 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팔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해충이 참외를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추석이 다가와 참외밭을 둘러봤다. 적어도 몇 봉지는 팔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철이 지나 한 봉지에 만 원 정도밖에는 받을 수 없었다. 궁리를 하다 산에서 더덕을 캐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산을 헤매며 더덕 2~3㎏ 정도를 캤다. 그리고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어느 날 주일미사를 드리고 비닐하우스 앞에서 참외를 따서 팔기 시작했다. 참외 여섯 봉지와 더덕을 펴놓고 파는데 그날따라 마수걸이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속으로 '주일은 안식일인데 계명을 어겨 그런 모양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대 만에 참외가 팔리나 싶어 지나가는 차들을 헤아리는데 공원묘지에 근무하는 상무님이 참외를 팔고 있는 나를 보고 차를 세워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말했다.


 "신부님, 뭐하세요? 또 참외 파세요? 하여튼 대단하세요. 그런데 신문지에 있는 것은 뭐예요?"


 "산 더덕 이라예."


 "신부님, 이젠 더덕도 팔아요?"라며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는 것이었다.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고 가끔씩 신세지는 것도 있어 더덕 한 움큼을 쥐어주고 "이거 진짜 산 더덕이구마, 잡수이소"하며 얼버무렸다. 상무님은 받자마자 옆에 있는 집사람에게 "이거 진짠갑다. 향기 좋오타~"하며 떠났다.


 얼마 지나 차가 한두 대씩 서기 시작했고 참외가 한 봉지씩 팔려나갔다. 그러나 정작 심혈을 기울인 '산 더덕'은 인기가 없었다. 허탈하게 앉아있는데 지나가던 차 안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그는 다름 아닌 예전 본당 주일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


 "아니, 신부님 여기서 팔고 계세요? 길가에서 참외 판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우얀 일인교?"


 "아버님 산소가 여기 있어요. 그런데 신부님, 참외는 얼마에 팔아요?"


 "그냥 가가소."


 "아이 그래도 돈은 드려 야지예" 하며 돈을 억지로 쥐어주는 것이다. 그때 쭈그리고 앉은 발 앞에 놓아둔 더덕이 눈에 들어왔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주며 "집사람하고 맛있게 잡수이소"라고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본당에 돌아왔다. 더덕 판 돈도 없고 더덕도 없고 참외 판돈 5만8000원만 있다. 더덕을 싸두었던 신문지를 정리하며 공원묘지 상무의 목소리와 큰돈 하겠다고 들떴던 며칠 동안의 착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다.


 "아이고 등신아…, 고추장 발라가 니나 구워묵으라."


                    - 김호균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 차장)

 

                 

 

       

                             

                                With my wild g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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