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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괴짜수녀일기< 6 > 가르멜 수녀들을 웃겨라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6 조회수658 추천수9 반대(0) 신고
 

                   가르멜 수녀들을 웃겨라

                    

                             


   가르멜 수녀원은 어느 곳이나 그 느껴지는 분위기가 비슷한가 보다. 고즈넉하고 육중한 느낌. 성당 분위기는 조금 전 지나온, 잘 가꾸어진 입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난 근 2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 수녀를 만나러 가는 중이다.


   왔다는 것을 알리고 조금 기다리려니 낮기도 선창자의 목소리가 적막한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은은하게 들려왔는데, 그 음색이 귀에 익었다. 내 친구의 목소리였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목소린 그대로구나.’


   사실 나는 자신을 ‘경도(輕度) 청각 장애자’라고 생각했었다. 유식한 전문용어를 사용하면 그렇고, 편하게 얘기하면 ‘가는귀가 먹은’셈이다. ‘강 베드로’를 ‘깡패들’로. ‘성총(聖寵)이…’를 ‘송충이’로 잘못 알아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만상이 고요해서 그럴까. 하여튼 친구수녀는 내가 찾아온 것과 자기 목소리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격해 했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수녀원 휴식시간에 초대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그곳 원장수녀님의 특명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넓은 객실 한가운데는 격자  무늬의 쇠창살이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었고, 그 창살 너머로 열여섯 명의 가르멜 수녀님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우선 ‘베스트 스토리’라 할 수 있는 임시번호판 사건 ‘화성경찰서장’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험상궂게 생긴 동네 아저씨 새 자가용에 ‘화성경찰서장’이라고 새겨진 임시번호판을 보며 ‘아함, 그러면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가 다 끝난 후에도 건너편 수녀님들에게서는 전혀 웃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수녀원 안에서 기도만 해오던 분들이기에 그런 상황을 알 리가 있나. 부연 설명을 거듭하자 하나둘 웃기 시작하더니 다들 이해가 되었는지 와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단 분위기를 잡게 되니 그 뒤부터는 완전히 쇠창살 안(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구분이 안 되었음)의 재주부리는 원숭이(?)가 되어 두어 시간 얘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다음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친구 수녀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딸꾹질까지 하면서 먹으며 원장수녀님이 주신 카드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생전 처음인 것 같아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웃어본 적은요. 우리 온 수도가족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셨어요.”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With solitary my wild g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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