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감추어져 있는 축복 발견하기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6 조회수631 추천수6 반대(0) 신고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루가 6,43-46)


  저는 요즘 성서 못자리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서 못자리와 첫 인연은 1990년 안병철 신부님께서 명동성당에서 첫 강의를 시작할 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못자리 다섯권과 나눔터 강의에 참석하였고 그 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안 신부님께서는 특별히 평신도들이 성서에 목말라한다는 점을 아시고는 한편으로 교재를 써가며 밤에는 강의해가며 교우들에게 성서를 보는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이전에도 카리타스 정릉 수녀원에 다니며 그룹성서 공부를 했고 봉사도 하고 있었지만 참으로 성서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전만 해도 각 본당에서 소수의 여자 교우들만 성서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저 같은 남자들은 성서 공부라도 할라치면 배움터가 무척 부족했습니다. 저 같은 남성이 겪는 성서에 대한 갈증을 풀라고 안 신부님께서 야간반을 만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신부님께서 몇 안되는 남성 참가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안 신부님께서 뿌린 씨앗이 여기저기서 커다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언 성서에 가까이하고 지낸지가  20년이 흘렀지만 요즘 들어 점점 어렵고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새로 배우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더 많아 집니다. 제대로 알아듣는지도 두렵습니다. 다만 정릉 수녀원까지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려가며 3년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여러 수녀님들이 봉사해 주셨는데 나이 많은 남자들과 묵상하시기 쑥스러워 그랬는지 몰라도 매 주 읽으셨던 책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독후감을 적어 나누셨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책을 소개받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묵상을 꼭 노트에 적어오도록 시키셨습니다. 어쩌면 혹독한 훈련이었지만 되도록 따르려 노력하였고 그 덕을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항상 수녀님들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형제님들과 성서 나눔을 하였습니다. 첫 봉사는 C 동에서 창세기 그룹성서였습니다. 그때가 무척 인상에 남습니다. 비록 지금보다 아는 것도 없고 모든 면에서 부족했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다들 잘 따라주셨습니다. 그 동네 분위기가 가난한 지역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짬 내기가 무척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습은 못해 오셨지만, 출석만큼은 열심히 하셨습니다. 직업도 갖가지였습니다. 현직교사, 구멍가게 주인, 은행원, 복덕방 주인아저씨, 중소기업에 다니는 기술자, 무직인 분 등 다양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데, 딱히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직업이랄 것도 없는데 등기소에 들락거리면서 등기부를 열람하며 주인 없는 땅이나 일본인 명의로 된 땅을 찾아내서 싸게 불하 받거나 점유해서 되파는 일이라고 하던데 아직까지도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영세를 받고 나서는 불법적인 일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수입이 엄청 줄었다고 합니다. 나쁜 마음만 먹으면 큰돈 벌 것이 눈에 훤히 보이지만 도저히 못하겠다고 고백하더군요. 성서 공부하는 가운데 여러 형제님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나누는 것을 들으며 그동안 집에서 혼자 엄청 울었다고, 성모님 앞에 꿇어 앉아 새로운 일거리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다 큰 어른이 꺼이꺼이 웁니다.


  그 이년 후에 저는 직장도 옮기고 집도 이사해서 교적을 옮기게 되어 그 형제님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 후 또다시 새로 옮긴 지역은 중산층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성서 공부에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성서 못자리 봉사를 시작하려고 사무실에 부탁해서 광고내고  간신히 여섯 분을 모아 나눔터를 시작하는데 둘째 주에 네 분 셋째 주에 두 분 나오시더니만 넷 째 주엔 연락도 없이 한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시지 않더군요. 지금이야 휴대전화로 연락해 보면 되지만 그 때야 무슨 방도가 없는 때니 정말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난 정말 성서를 맛들이게 하고 싶었는데..... 분한 마음이 다 들더군요. 다들 대학까지 나오고 좋은 직장에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서 잘만 하면 이 본당에도 지난번처럼 봉사자도 내고 뿌리를 내려 보자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핑계지만 그 뒤론 주일미사마저 빼먹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판공성사만 간신히 때우고 일 년에  열 번 정도만 주일미사에 참례했나 봅니다. 그러니 자연히 옛날 그룹원들 소식은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직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겁 없이 불 끄다가 3도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상병동에서 저는 정말 행운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상병동에 가보면 알겠지만 정말 두 눈뜨고 못 볼 장면이 많습니다. 왜들 그리 어려운 사람만 있는지 주로 화상사고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당하더군요. 치료비는 엄청 비싼데 의료보험마저도 모두 혜택을 주지 않더군요. 그런 중에도 화상 환자들 사이에는 죽음에서 빠져 나왔다는 동료애 같은 것이 있습니다. 화상 치료 받는 게 얼마나 아픈지 아마 상상이 안 될 겁니다. 매일 소독하고 붕대 바꾸는 치료를 하려면 진통제 주사를 미리 맞고 합니다. 아마 하루 이틀이면 누구라도 견디지요. 이런 고통을 잘 알기에 서로에게 아낌없이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화상병동은 오히려 화기애애합니다.

  낯 찡그리는 사람은 문병인 밖에 없습니다. 저는 삶이 지루하거나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화상병동에 반나절만 가 있어 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운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사고로 양 팔에 화상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상처를 야곱의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면서 생긴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살았듯이 저도 그러겠지요. ‘할아버지의 기도’ 라는 책에서 보면 야곱이 지닌 상처의 의미는 “모든 것 안에는 그 나름대로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데 있다.”, “아마도 우리는 불행한 일을 만나더라도 그곳에 감추어져 있는 축복을 발견하기까지 용기 있게 붙잡고 싸움을 계속할 때에만 삶을 사는 지혜를 얻게 된다.” 예, 저도 그랬습니다. 제 상처를 통해 제가 그동안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아왔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M 본당에서 다시 성서 못자리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시작하고 있던 여성 봉사자 분이 제가 못자리 봉사자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모임이 너무 잘 되었습니다. 그룹원들이  얼마나 열심이신지 어떤 때는 자정을 넘겨가며 공부와 묵상에 몰두 했습니다. 보다 못한 주임신부님께서 성당에서 내쫒으실 때 비로소 파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반에서 올해 봉사자가 세 분이나 나왔습니다. 새로 되신 봉사자님들이 스스로 새벽미사부터 매 미사시간 후에 띠를 두르고 광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임 반도 네 반이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열매였습니다. 본당에서 성서 공부하는 열의도 눈에 띄게 커졌습니다.

 

  그 때와 무슨 차이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나 주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는 없더군요. 다만 한 가지 이 상황이 너무도 감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도 발전이겠죠. 또 한 가지는 얼마 전에 C 동에 본당의 날 잔치가 있다고 하고, 그 당시 보좌신부이셨던 A 신부님께서 주임신부님으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차 들렀다가 지난번 그 형제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 하시냐고 묻고 싶었지만 너무 오랜 시절이 흘렀기에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고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요즘 성서 봉사합니다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감사할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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