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감곡 본당에서 보낸 하루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7 조회수902 추천수9 반대(0) 신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루가 9,23-26)


  오늘은 청주 교구에 속한 감곡 성당에 주일미사참례와 순례를 했습니다. 중부 내륙 고속국도가 뚫려 집에서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더군요. 태풍 소식에 나들이하는 분들이 적어서인지 고속도로도 한가했습니다. 예상보다 여유 있게 도착하여 성물판매소에서 친척아이 첫 영성체 때 줄 선물을 골랐습니다. 본당 안 정면에 모신 매괴의 성모상 앞에서 인민군이 난사한 따발총 총알 자국이 선명한 것을 바라보며, 그래도 깨어지지 않고 무사하게 서 계신 성모상 앞에서 미사 전 묵상도 했습니다.

 

  올해가 본당 창립 110 주년 되는 해인데다가 성모순례지로 선포되는 뜻 깊은 해라고 합니다. 각 본당마다 미사전례가 특징이 있지만 감곡 성당은 복음 말씀을 신부님과 전 교우가 합송하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눈과 귀로만 복음을 읽다가 직접 소리 내어 합송하니 더욱 또렷이 그 내용이 전해왔습니다. 주임 신부이신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의 강론도 우렁차고 성악가와 같은 목소리에 실려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레고리안식 주례신부의 곡조도 거룩한 미사가 되는 데 일조 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미사 전례를 매주 드리니 참 복 받은 본당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이동대축일을 맞아 김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인상 깊었습니다.


  한자, 거룩할 성(聖)의 解字풀이를 재미나게 하셨습니다. 귀(耳)와 입(口)을 王처럼 잘 사용해야 성인이 된다고 하십니다. ‘王’ 字도 하늘과 땅을 ‘十’ 字가 연결시키는 형상이라고 해자풀이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어 王이 되셨듯이 우리 각자도 제 십자가를 지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또 입안에 있는 혀를 잘 놀려야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시며, 예할 때와 아니오 할 때,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잘 가려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참수되실 때 망나니에게 인자한 눈길로 “어떻게 자세를 잡으면 그 칼로 내 목을 치기 편하시겠소?” 하시면서 목을 길게 늘이셨답니다. 그 모습에 망나니마저 감동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감곡 성당 안에 최양업 신부님의 아버님이신 최경환 성인의 유해가 모셔 있는데 그분은 기해박해 때 하도 많아 맞아 장독으로 순명하셨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순교 이야기는 강론을 듣는 모든 교우가 눈물을 한 말씩은 쏟았을 겁니다.

  마침 옥사에 젖 먹이 아이와 함께 갇혔는데 곤장과 굶주림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젖에 나올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혹시라도 젖이 돌까하여 피와 고름으로 범벅이 된, 바닥에 깔린 짚을 씹어 보았지만 젖이 돌리가 만무였습니다. 집에 두고 온  세 어린 자식이 눈에 밟혀 잠을 못 이루고 젖 먹이 아이라도 살려 볼 요량으로 어찌어찌 말하여 집으로 돌아  오니 세 아이가 이구동성으로 “아이고 어머니 어쩐 일이요? 큰 형님 신부돼갔고  돌아 오믄  무슨 낯으로 살려하오. 우리 걱정일랑 조금도 말고 간난아이 우리 기를 테니 엄니랑은 고만 돌아가소.” 하더랍니다. 그길로 옥문을 두드리며 아까 한 말 취소하니 이 몸 갈길 막지마소 하고 다시 옥에 갇혔답니다.

  세 아이가 어머니 참수 전 날, 온갖 동냥하여 다니다가 망나니 집에 쌀이랑 피륙이랑 걷어다가 "우리 에미 단 한 번에 목을 내리 쳐 주시오." 하고 부탁했더랍니다. "이것 별거 아니나  받으시고 어린놈들 부탁이니 거절 말고 들어주소. 오늘 밤에 날 서도록 칼을 갈아 내일 형장 써주시오" 했더랍니다. 보통은 망나니들이 고통을 더 징허니 주려고 온갖 잡춤을 추고 난 뒤 첫 번째 칼부림에는 칼등으로 목을 쳐 놓고 나서 세 번에 나누어 칼질 했다고 합니다. 형장에 오지 말라고 하는 어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 아이들이 형장에 나와 지켜보니 참담한 어미 모습에 그중 어린놈이 참지 못하고 흑흑 거리니, 에미 자식 인정은  누구라도 아는 법. 이 악물고 오열을 삼키는 에미를 망나니가 단 칼에 베었다고 합니다.

   모든 순교교우들은 어떤 감언이설에도 흔들림 없이 옥중에서 기도하며 순교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 선조들이 남긴 순교의 덕으로 컸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답니다.  선조들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으니,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째 적극적인 수계생활입니다. 단순히 십계명 중 금지 항목만 지킨 것이 아니라 나서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흉년이 들면 곳곳에 아사자가 났어도 교우 촌엔 모두 궁핍하나마 먹을 것을 나누었고 일반 백성에게까지 음식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기도 생활인데 옥중에서 조차 십자가의 길과 삼종기도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전도생활인데 목숨을 바쳐가며 하느님 말씀을 기쁜 소식으로 전했다고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아마도 주님께서 네 생애에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제했느냐고 물으실 텐데 어찌 준비하고 있냐는 김 신부님의 강론에 속으로 뜨끔 하는 창피가 솟아올랐습니다. 이 세 가지 모범을 후손인 우리도 적극적으로 따라야 할 것 아니냐며 강론을 마치셨습니다.


  오늘 오랫만에 순교 성인과 그분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뜻 깊게 보낸 하루였습니다.



출처;야후블로그<시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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