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88) 용한(?) 신부 / 정광호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8 조회수1,027 추천수3 반대(0) 신고

 

 

 

                       글쓴이 : 미국 버팔로 성당 : 정광호 도미니코 신부님

 

 

8년 동안 누워서 지내는 남편을 돌보는 이다(ida) 할머니의 표정은 의외로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병자 영성체를 마치고 작은 방으로 인도된 내게 젊은 시절의 옛 앨범을 건네주면서 사진설명에 정신이 없지만 거실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이 헤살을 놓는다.

 

"이다 할머니, 거실에 할아버지는 지금 누구랑 함께 있나요?"

"으음......  아무도 없어요. 그의 어머니 밖에는....."

 

그 할아버지의 어머니라니........

어이쿠 나이가 또 얼마나 많으신 분일까?

왜 소개해주시지 않았느냐는 눈빛을 보내면서 거실로 들어선 나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할아버지께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분은 다름 아닌 당신이 마주보고 있는 벽 위에 걸려있는 성모님 상본이었던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실제로 마주하고 나누는 듯한 대화들이 분분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저를 한번 돌아보세요. 제가 어머니만 쳐다보고 앉아 있잖아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 곁에 가고 싶어요. 이제 불러주세요."

 

"저는 버얼써부터 떠날 준비가 다 되었다구요. 이다도 나를 보낼 준비가 되었구요."

 

 

며칠이 지났던가.......

아침미사를 마치고 제의방을 나서는 나에게 달려드는 여자분이 있었다.

이다 할머니였다.

 

다짜고짜 내손을 잡고 끌어안으시며 고맙다는 인사가 끊이질 않는다.

그 이유인즉, 내가 할아버지 옆에 기대어 앉아서 함께 기도했던 그날 저녁에 당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원하던 그 길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내일이 장례식이란다.

 

매주 금요일 병자 영성체를 주시던 <론 신부님>이 휴가를 떠나면서 2주간 내게 부탁했던 할아버지였다.

잦은 심장발작으로 꼼짝할 수 없이 누워 아내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할아버지.

 

틈틈이 죽여달라는(?) 애타는 기도가 론 신부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청해졌지만 이렇게 단 한 번의 방문과 기도로 이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나를 아주 용한(?) 신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한 몸에 더없는 고마움을 분에 넘치게 받았던 기억이다.

이다 할머니는 지금도 매년 카드를 보내오신다.

 

오하이오주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보좌를 하던 때였다.

새벽에 울리는 사제관의 전화는 잘은 몰라도 졸병 보좌가 받아야 될 것 같다는 느낌에 덥석 받곤 했다. 영락없이 병자성사를 청하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가늘게 그러나 다급하게 실려온다.

 

양로원 입구에서 기다리는 가족들과 함께 방에 들어섰다.

숨을 마구 몰아쉬면서 가늘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는 할머니 한 분......

긴장과 초조가 드러나 있는 눈빛을 마주하면서 미숙한 동양인 젊은 신부가 이 죽음자리의 할머니에게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슴 한편에 자리를 편다.

 

혹시 할머니도 이걸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애써 당당해 보지만 역시 주님께 기대어 서는 것이 항상 더 나았다.

앙상한 손을 두 손으로 두텁게 감싸 쥐고 기도를 시작하노라면 다시 되잡아오는 미미한 환영의 손길이 느껴진다.

 

"할머니, 예수님을 만나실 때 이 도미니코 신부의 안부도 꼭 전해주세요."

병자성사를 무사히 마친 젊은 신부의 안도감의 표현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꼭 그렇게 하겠노라는 몸짓이 가득 느껴지는 건.

처음의 긴장, 불안 등은 찾아볼 길 없고 평화와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기쁨과 고마움이 넘쳐나는 눈물로, 전송받아야할 할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방문을 나서다 불현듯 앞을 막아서는 생각이 있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차라리, 차라리 저 할머니랑 나랑 서로 자리를 바꾼다면 어떨까?

 마지막 시간에 평화롭게 떠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또 계속해서 죄를 짓고 살 내 모진 인생보다 이제 평안히 준비된 모습으로 떠나는

 저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가?'

 

내가 얻은 것은 내 능력의 결과요 내 노력의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며, 어느 것 하나라도 잃으면 온 몸을 떨면서 반항하는 몸짓이 오늘을 사는 나의 얇은 모습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는 것을 몰랐기에......

 

삶이 시작되는 순간에 죽음의 씨앗이 이미 함께 자라고, 죽음이 의기양양한 바로 그 순간에 새 생명(부활)이 춤추기 시작한다는 진리를 신앙으로 살아낼 수 있다면 어찌 행복이 그리 멀리에만 있을까.

 

 

 

 

                              *******

 

*** 미국 그리스도성혈선교회 수도자. 버팔로 한인성당 사목자, 미주 교포사목 총무 등 여러 이름을 가진 정광호 신부는 버팔로 청년들이 지어준 '이장님' 이라는 별명이 가장 좋다. 마음 기댈 곳 없는 타국 생활에서 신앙을 통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청년들을 만나는 기쁨에 피곤을 잊는 그는 공부를 핑계로 교회에서 멀어지는 청년들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올곧게 나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동네 어귀를 서성인다. ****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