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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9 > 내 친구 박진원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8 조회수1,064 추천수9 반대(0) 신고

 

                         내 친구 박진원



   박진원이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을 밝혀서 미안하지만 본명은 아오스딩으로서 한마디로 이 친구는 아주 재미있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순수해서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자주 황당하게 만들었다. 단순함이 그의 장점이요 또 단점이었다.


   아오스딩을 처음 만난 것은 1974년으로 광주광역시에 있는 어느 수도회에서 였다. 그와 나는 나이가 같은 데다가 입회 동기생이었기 때문에 서로 친했는데 그는 경상도의 모 수도회 청원 수사로 있다가 적성이 안 맞는다 하여 수도회를 바꾼 것이 나와 만난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은총이요 축복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개성이 서로 강하고 성격이 아주 독특했는데 그쪽이 더 유별나서 내가 괴짜였다면 그는 괴물(?)이었다. 사사건건 그는 문제를 만들어 나와 다퉜는데 서로 싸우면서도 우리는 의기 투합할 때가 더 많았다. 좌우간 그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수도원 전체를 흔들곤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외국인 수사들은 슬리퍼를 한 번 신으면 실내고 실외고 구분하지를 않고 다녔는데 그것이 그들의 생활 습관이었다. 그러나 수도원의 실내 청소를 담당한 아오스딩으로서는 그게 여간 큰 불만이 아니었으며 그리고 그냥 넘어갈 그도 아니었다. 미사 때의 일이었다.


   신자들의 기도가 막 시작될 때 아오스딩이 얼른 스타트를 끊더니만 ‘실내화를 신고 문밖을 출입하는 수사님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하면서 공개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미사는 이내 웃음바다가 되었고 영문을 모르던 외국인 수사들은 얼굴만 벌개진 채 궁금해 하다가 나중에 자초지종을 듣고는 두 손을 번쩍 들게 되었다.


   “무섭습니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아오스딩은 수도원의 분위기를 혼자 장악하더니 누구든 맘에 안 드는 수도자가 있으면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기어이 찾아가서 대들며 따졌다. 그때는 좌우간 아오스딩에게 당하지 않는 수도자가 없었으며 또 수도원 내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으나 웬일인지 나한테만은 꼬리를 자주 내렸다. 사람들은 그래서 나를 그의 ‘천적’ 이라고 불렀다.


   아오스딩은 수도자로서 열심히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묵주기도도 하루에 50단, 60단씩 바쳤으며, 열심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노력한 것만큼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내 쪽에서도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얼마 후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는 관계로 그와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서운하게도 그수도원은 신부를 양성하지 않았다.


   내가 수도원을 떠난 뒤에도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수도 생활을 잘했으나 결국 적성이 안 맞는다 하여 종신서원을 앞두고 수도원을 떠났는데 그때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신학교로 나를 찾아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그가 한 말은, 아무리 열심히 살고 싶어도 돌아가는 세상이 영 맘에 들지 않아 수도원에서 더는 못 살겠다고 했다.


   아오스딩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미국에서 좋은 여자를 만나 잘산다고 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갖게 되었고 특히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이후에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1993년 시월이었다.


   안식년을 맞아 내가 마이애미 성당에 초청되어 갔을 때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아오스딩한테서 전화가 왔다. 만나자는 것이었다. 마이애미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는 비행기로 6시간 거리였으나 그러나 거리와 시간이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리고 보고도 싶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미국 서부의 관광 스케줄을 다 잡아 놓고 있었다. 성질도 많이 달라졌지만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넓어져 있었다. 처음 그에게 사기를 쳤던 어떤 형제가 결국 감복하여 죽을 때 아오스딩 손을 잡고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했으며 그리고 이웃에게 늘 친절하게 대한 덕분으로 지난 흑인 폭동 때도 무사했다고 한다.


   좌우간 무척 반가웠다. 우리는 밤 새 얘기를 나누며 옛날 수도원 시절을 회고 했는데, 이젠 한 잔 술에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그를 보고는 우리도 이제 늙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R)


  “예수님, 저희도 이제 5학년입니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With solitary my wild goose

 

                            

                                          Autumn 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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