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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번지 점프 / 신원식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19 조회수892 추천수8 반대(0) 신고
 

9월 17 일 (일)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이동 대축일

 

지난 17일에 동정 가르멜회에서 주관한 관상피정미사에서 신원식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 말씀입니다.

 

순교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신앙뿐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하는 행위중에서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순교자 성월이 항상 마음의 부담이 있습니다.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고 "대단한분들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럼 너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느냐?"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순교자들이 처음부터 확고하게 목숨을 바쳤는지....고통을 겪으면서 신앙이 성장했는지....

 

순교자들의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순교를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순교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아들의 대답이 "지금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네가 지금까지 받은 하느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아들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는 배교를 했고 아들은 순교를 했습니다.

 

배교한 사람들도 결국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보실 것입니다. 침묵이라는 소설에 배교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죄인이라면 우리는 설 곳이 없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들에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하게 하였는가? 죽는 당사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가문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가문이 아주 중요했던 시기입니다.

 

12살에서 60세 노인까지 대략 10,000명 가량이 순교를 했습니다. 12살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고 천민 신분에서부터 남종삼 처럼 높은 관직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확신이 있을 수 있을까? 순교자들이 겪는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대원군이 청나라에 잡혀갔을 때 순교자들이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수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음식을 넣어 주어야했습니다.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목마름었다고 합니다.

 

곤장을 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살이 썩게 되는데 가마니에 고름이 떨어져 썩은 가마니를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6개월, 1년을 지내는 것은 인간의 한계로는 감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외적인 고통에 대해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을 많이 하지만 내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내적인 고통에 대한 우리의 체험과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외적으로 볼 때, 인간의 한계에 넘어서는 고통을 겪었는데... 그분들이 외적으로는 고통을 겪었지만 내적으로는 충만함을 간직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괴로울 것 같지만 몸이 아파도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었을 때, 한 신부님께서 세가지 암으로 온 몸에 암이 퍼져 있었지만 그 분을 만난 사람들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그분을 위안하기 위해 갔던 사람들이 그 신부님을 만나고 내적인 위로를 받고 나왔습니다.

 

남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내안에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내안에 평화가 없으면 다른 이에게 평화를 줄 수 없습니다. 찾아간 사람들이 위로를 하러 갔다가 위로를 받고 돌아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적 확신, 그런 믿음,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내적인 충만감은 잘 모릅니다. 분명히 외적으로는 고통을 받았으나 이러한 내적인 충만감이 초인적으로 외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결국을 우리 삶에서 많은 혼란, 두려움, 고통, 절망이 있고, 불행하고, 아프고... 그 모든 인간의 고통이 죽음으로 연결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다면 완전히 해방 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저도 잘 모릅니다.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고 일상중에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에 내가 희생해야 된다든지, 내가 고통을 받아들여야 된다든지, 외로움과 절망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순교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점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고통, 슬픔, 큰 절망, 큰 무력감들이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옵니다. 이 때 내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내가 뛰어 드는 것, 내 자신을 맡기는 것은 내가 점프하는 것입니다. 그 때 내안에 평화와 충만감이 넘치게 됩니다.

 

점프해야할 때 점프를 하지 못하면 밑으로 뚝 떨어집니다.

 

일상중에서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순교의 기회가 왔을 때 뛰어 들어야야 합니다. 내가 점프하고 자유로와지고 해방됩니다. 내가 번지 점프를 하기 위해 번지 점프대에 올라섭니다. 어떤 사람은 귀찮아서 되돌아가고, 올라갔다 뒤돌아 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줄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내가 체험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내안에 충만감이 차오르고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가? 길을 가다가 번지 점프대가 나타나면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보통 , 사람들은  "왜 내가 편히 가려고 하는데 이런 장애물을 주실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다. 그렇게 받아들여야하고 점프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이 순교할 때, 결국은 도망간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죽음이 자기 앞에 닥칠 때, 선물로 받아들인 사람은 순교를 하나 그렇지 못하면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주어지는 순교의 기회를 잘 살펴보고 받아들이면 우리의 믿음이 급행열차를 타는 것입니다.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조금씩 가라 앉거나 떨어집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자유스럽게하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기회에 순교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이면 자유로움과 평화로움과 위로를 받게 됩니다.

 

순교라는 것은 선택입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도망 다닐 것이냐? 뛰어내릴 것인가?" 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민수기에 "나는 너희 앞에 죽음과 생명을 내 놓는다. 나는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 놓는다. 네가 선택하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순교자 성월을 보내면서 그분들이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도움을 청하고 잘 받아들이고 기꺼이 우리 자신을 버릴 수 있도록, 인격적인, 직접적인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충만함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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