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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 > 괴짜수녀일기 / 천국에는 차표가 없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1 조회수857 추천수9 반대(0) 신고

                           

 

 

                         천국에는 차표가 없다?


   로마에서 회의가 있어 잠시 로마와 독일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제일 부러운 것이 있었다면 우리와 아주 다른 ‘차표문화’라고 할까. 로마에서는 차표 한 장으로 90분 동안 어디든지, 몇 번이든지 버스를 갈아탈 수가 있고, 뮌헨에서도 역시 표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다. 물론 내릴 때 차표를 반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모든 점이 대중교통수단 이용자들에게 편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특별히 ‘차표 반환 불필요’라는 부분에서는 건망증이 심한 이들에게 천국(?)을 연상케 하였다. 바로 나 같은 사람에게 말이다.


   나는 워낙 차표 간수에 소질이 없어 다른 누구와 함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면 내 차표를 맡아달라는 낯부끄러운 부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락없이 탈이 나고 만다. 언제 어떻게 그 차표가 있지도 않은 발을 달고 달아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인간적이어서 전철 표를 직접 역무원에게 내고 나올 때였다. 개찰구를 막 나오려는 찰나. 아니, 전철 표를 아무리 찾아도 없지 않은가. ‘내 이럴 줄 알고 분명히 어딘가에 잘 넣어 두었는데.’ 그래도 수도자로서 품위를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주머니 속 소지품을 꺼내 놓으며 샅샅이 뒤졌지만 결과는 ‘오리무중’.  역무원은 원래 무임승차 시 지하철 전 구간 요금의 세 곱을 받아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타고 온 구간에 대한 요금만 지불하고 나가라는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


   전철역을 나와 곧 버스로 갈아탄 후 버스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전철표가 손목시계 밑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뿔사! 요놈이 여기 있었구먼.’


   그 며칠 후, 전철 개찰구 앞에서 또다시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번에는 나의 최후의 보루인 손목시계 밑까지 점검해 보았지만 전철 표는 온데  간데 없었다. 참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히 여기에 둔 것 같은데.’ 이번엔 품위를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손가방, 주머니, 소지품 사이사이…, 행방불명된 전철 표를 찾느라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승객들은 모두 나가고, 개찰구에는 역무원만 혼자 끙끙대는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찾기는 글렀다 싶었던지 자기하고 나만 아는 사실로 하고 오늘은 그냥 나가라는 것이었다. 말끝에 “앞으로는 조심하라”는 주의를 덧붙이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치 지옥문 앞 사자처럼 무섭게 개찰구를 떠억 막고 서 있던 그가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쉴 양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왼쪽 팔꿈치 윗부분에 뭔가 딱딱한 게 걸리적거려 무심코 손을 넣어 만져보니 아이고 그 잃었던 전철표가 아닌가! 전철 안에서 내 키에 비해 높이 달린 손잡이를 잡고 힘을 쓰다 보니 그게 그곳까지 흘러왔나 보다. 이미 차는 떠났고 아까 그 역무원의 너그러운 마음씨를 생각하면서 혼자 미소를 지을 수밖에.


   “하느님, 당신이 전철표 받으세요. 나는 우선 낮잠이나 한숨 자놓고 보아야 겠심더.”(R)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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