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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친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1 조회수868 추천수7 반대(0) 신고

<진정한 친구>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9-13)


  호스피스 교육가이드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 의외의 것이 있었습니다. 환자 가족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에 대하여 적은 것이었습니다. 환자 가족도 간병 중에 환자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비슷하게 일으킨다고 합니다. 분노와 비난, 공포, 죄책감, 불쾌함, 희망과 절망, 우울 등의 감정을 단계적으로 느낀답니다. 그런데 어떤 가족들은 직접 환자에게 분노하는 경우도 제법 있답니다. 자신이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관계와 생활을 파괴하는 병에 대해 분노할 수 있답니다. 또 자신에게는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에도 그럴 수 있답니다. 그래서 ‘환자의 잘못’으로 병을 얻었다고 짐작하고는 환자에게 그 잘못을 캐어내고 책임을 묻기 위해 애쓴다고 합니다. 그 밑바탕에는 마치 환자와 달리 자신들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으니 건강할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대놓고 식사습관이나, 못된 잠버릇, 나쁜 배변 습관, 흡연, 음주 등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설교하려 든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환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잔소리랍니다.

  그 책에서 환자에게 조언을 자제하라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자신이 그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겠지만, 환자에게는 오히려 거리감을 주게 되고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설령 우리의 설교가 지당한 말이라도 도움이 안 되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고 합니다.

  임종하는 환자가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고통을 줄여 주고 가족들과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 마태오와 그 친구들은 살아 있어도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은 물질적인 고민이 해결되면 누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명예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살았습니다. 구원의 희망은 아예 꿈에도 못 꾸었습니다. 스스로에게도 한탄과 연민의 삶을 살았겠지요. 사방이 꽉 막힌 곳에 외톨이로 떨어져 있는 괴로움은 아마도 죽음 못지않았을 겁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의 위력은 엄청났을 겁니다.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꿈꾸어 왔었기에 그는 그 부르심의 의미를 즉각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 일어나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난 뒤,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도움이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환자의 삶을 일일이 정리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도움과 또 하나는 죽음이 삶의 의미를 결코 앗아가거나 그 가족과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이 환자를 잊는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을 강화해 주는 정신적 도움이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고 유언을 정리하며 인간답게 죽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임종을 맞는 환자들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과 죽고 나서 자기가 그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삶이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태도는 마치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저주를 퍼 붓는 어리석음과 진배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리사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죽음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그것은 곧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죽음을 맞는다면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이겠습니까? 아마도 분명히 주님이라는 고백을 주저 없이 할 것입니다. 마태오는 이처럼 예수님만이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 15,15)


  우리가 진정한 친구를 놔두고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입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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