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많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3 조회수619 추천수6 반대(0) 신고

 

<많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루가 8,4-15)


  갈릴래아 땅에서 초기 복음 선포에 큰 반향을 일으키셨던 예수님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기와 몰이해로 점차 곤란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과 장차 수난을 당할 것이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시작하시자 그만 많은 추종자들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거기다가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한다는 소문이 돌자 몇몇 제자와 여인네들만 들어 내놓고 쫒아 다닐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공에 대해서 트집만 잡으려고 덫을 놓고 기다리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께 비아냥댑니다.


“그렇게 당신을 쫒아 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어디서 비렁뱅이 같은 놈들 몇몇하고만 다니느냐? 그래 또 무슨 기적으로 우리를 놀래주려 하느냐? 네 말이 맞다면 어서 빨리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어봐라.”


  이에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mashal, mathla, 수수께끼 말)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제자들마저 그 수수께끼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속마음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들이 농사지을 때처럼 그 땅을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리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비처럼 골고루 뿌려졌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뿌리를 내리고 그 소출에도 차이가 있게 된다. 비록 많은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들게 되었지만 그래도 좋은 땅은 여전히 더 넓고 크다. 그 비옥한 땅에서 난 소출이 수십 수백 배의 결과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니 씨 뿌리는 사람은 아무 실망도 하지 않고 더 큰 소출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씨를 온 땅에 골고루 뿌릴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힘이 있으시니 반드시 이루어진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또 실망하지 말고 곡식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려보아라.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 어투이기 때문에 어감이 어색합니다. 마치 미리 덫을 놓고 걸려 들기를 가다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히브리어 어투는 ‘결과론적 목적문’의 형식입니다. 유대인들은 결과를 가지고 마치 목적인양 표현한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도 몰라주는 그 결과를 마치 예상한 듯이, 그것이 목적인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초기 공동체와 우리는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을 “뿌려진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의 비유” 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길인지, 돌밭인지, 가시덤불 자란 땅인지, 좋은 땅인지를 성찰해 보아야합니다.


  저는 신앙에 어둔 밤이 찾아올 때 오상의 비오 신부님을 묵상합니다. 성인을 소개한 책과 DVD를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와 동시대를(1887-1968) 사셨던 분이셨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분의 생애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실들은 단순히 기적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들어내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냉담자 회두권면 때 이 책과 DVD를 이용하길 권합니다.

  그 오상의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인간이 지은  전쟁의 죄가를 대신 받겠다는 비오 신부님의 청원이 받아들어졌습니다. 오상의 고통을 은총으로 여기신 성 비오 신부님은 그 뜻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고통의 구제를 위한 집”이라는 병원을 설립하여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치유의 은사를 통하여  직접 병이 낫도록 치유하셨습니다. 그 밖에 평생 거룩한 미사와 고백성사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셨으며  순명의 자세를 보이신 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가르침이었는지 모릅니다. 한 때 고백성사 집행도 제한 받으셨고, 심지어 공개 미사전례 집행도 제한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 결정에 모두 순명하셨습니다.


  저도 한 때 사목회 일을 보았는데 가끔 의견충돌이 생겼을 때 제 고집을 꺾지 못하고 엇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오 신부님의 순명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무리 옳고 정당하며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드셨어도 결코 장상과 교회의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순명하셨습니다. 결국엔 모두 비오 신부님의 뜻대로 되었지만 그분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기도와 희생으로 모든 오류가 제대로 잡힐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런 성인께서도 순명하셨는데 저 같이 죄 많은 인간이 무엇이 잘 났다고 어깃장을 놀랴 하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 올수록 순명이 더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두들 똑똑해져 제 목소리만 낸다면 교회는 제 길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비록 우리가 보기에 시간이 걸리고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어리석음이 오히려 그 길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를 비난한 바리사이들의 행동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순명하지 못하고 제 뜻을 우선하는 행동입니다. 하느님을 제 손에 놓아 두려는 시도였습니다.  孟子에 송나라 사람이 자기 밭에 싹이 더디 자라자 보다 못해 그 싹을 손으로 잡아당겨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助長하다)가 한해 농사를 망쳤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말씀인 땅을 잘 가꾸는 일 못지않게 그 때를 기다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비오 신부님 축일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Amour Defendu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