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장 큰 사람'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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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09-24 | 조회수808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가장 큰 사람> (마르 9,30-37)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을 놓고 논쟁하였느냐?"하고 물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인간이 복음을 알아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를 다시 한번 보게 되고 그리고 인간이 복음을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러면 왜 그리 힘든 일인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묵상하게 된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고 계신 제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당신의 제자로 불러 주신 이들이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르코 복음 첫 장도 아닌 9장이고,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말씀이고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한테 교육을 받은 기간이 꽤나 된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거의 당신 활동의 종반부에 들어서고 있는데도 제자들은 아직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의 그런 상황을 마르코는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가치 있는 일에 대해서 논쟁을 한다면 그런데로 필요한 일이겠지만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그리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갖고 논쟁한다는 것은 상호간에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이며 시간낭비일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어리석은 일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서 너무 자주 일어난다. 정말 아무가치 없는 일에 열을 올리고 서로 싸우고,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공동체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얼마나 가치없는 일에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
논쟁의 원인이 무엇인가? 아니 논쟁이 왜 일어나는가? 오늘 복음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문제로 논쟁하였다. 논쟁의 내용을 보면 제자들의 관심이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즉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는데 있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 되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제자들의 욕망일 뿐이다.
오늘 독서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까? 여러분의 지체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욕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내다가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남을 시기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다."라고 야고보사도는 우리가 싸우게 되는 원인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자기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를 한다. 마치 신앙생활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의 내용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도록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을 채워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미사 참례도 하고 묵주기도도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느님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느냐?"라고 불평할 때가 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독서를 보면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지적하신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기 위해 기도하고 논쟁해야 한다. 우리는 육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욕정을 없앨 수는 없다. 육체의 욕정은 계속해서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육체의 욕정을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는 대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우리의 에너지를 자기의 욕정을 채우려는데 사용하지 말고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려는데 사용해야 한다. 자기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에너지가 소모되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악마를 대항해서 싸우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인가?
어린이는 나약하지만 하나의 완전한 생명으로서 그 어린이를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훌륭하게 성장할 수도 있고 악하게 성장할 수 있는 아직 미완의 존재가 바로 어린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를 돌보는 사람은 어린이가 훌륭하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랑을 갖고 정성스럽게 잘 돌봐주어야 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어머니는 어린이 앞에서 군림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리 굳은 자리에서 어린이를 돌본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사욕을 품지 않기"(코전 13,4-5 참조) 때문이다.
-유광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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