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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생명을 받쳐 주시는 하느님-----2006.9.24 연중 제25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4 조회수576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9.24 연중 제25주일

                                          

지혜2,12.17-20 야고3,16-43 마르30-37

                                            

우리의 생명을 받쳐 주시는 하느님



다시 하느님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장 많이 부르면서도

가장 모르는 분이신 하느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문득 하느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는 어느 분이 떠오릅니다.


제가 보속의 처방전으로 다음 말씀을 써 드릴 때

많은 분들이 눈물을 글썽입니다.

저의 여섯 째 숙부님께서

임종 전 일주일 내내 묵상하시며

마음에 새긴 말씀이기도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준다.

  정의의 오른 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41,10).”


어제 미사 시 화답송 후렴도 생각납니다.
“하느님 앞에서,

  생명의 빛 속에서 걸어가리다.”

 

오늘 화답송과 관련된 시편입니다.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받쳐 주시는 분이로다.”


오늘 우리 형제들이 새벽기도를 시작하며

우렁차게 불렀던 초대송 후렴입니다.


 “어서와 하느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노래 부르세. 알렐루야.”


얼마나 좋고도 아름다운 이름, ‘하느님’인지요.
인도의 성자,

간디는 하느님 이름만 정성껏 부르며 사소한 병을 치료했다 합니다.


얼마 전 맑고 밝은 가을 햇볕 아래

작고 청초한 들꽃들을 보며 써 놓은 ‘들꽃의 고백’이란 글을 나눕니다.

 하늘 아래
 커봐야
 도토리 키 재기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
 하나 부럽지 않다

 오래
 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단 몇 날을 살더라도
 하늘 임 사랑
 가득 담아

 활짝
 꽃으로 피어냄이
 영원한 기쁨이요 행복이다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들꽃 같은 인생입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들꽃 같은 수도자들,

찬미와 감사의 기도로

영혼의 꽃들을 피어냄이 영원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햇볕 축복 속에 청초하게 피어나는 들꽃들처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산들처럼,

하느님의 축복 속에,

하느님을 배경으로 하여

청초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평생 공부

하느님을 사랑하고 아는 공부뿐입니다.


이 좋으신 하느님을 잊어버려

찬미와 감사도 없는 부정적 비관적 어둔 삶입니다.
그 좋으신 ‘하느님 맛’을 잃고

온통 ‘돈 맛’에 중독되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의 감동도 새롭습니다.


대구대교구의 최 영수 보좌 주교님께서

몇 분의 신부님을 대동하고 잠시 수도원을 방문하셨을 때,

마침 철공 일을 하고 있던 어느 수사님을 주교님께 소개해드렸습니다.

소개받은 우리 수사님,

난데없이 주교님 앞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주교님, 강복 주십시오.”
주교님도 흐뭇한 표정으로 강복을 주셨고

떠나기 전 어느 수사님도 겸손히 강복을 청해서 받았습니다.
이래서 수도자입니다.

강복을 청해 받는 모습,

그대로 깊은 믿음과 겸손의 표현입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오늘의 2독서 야고보의 말씀처럼

천상 지혜를 받습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받아 사는 사람들,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 성품의 사람들인지요.
이들이 나누는 평화 속에 무르익어가는

의로움의 열매들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잊어버려, 하느님의 지혜를 받지 못해,

시기와 이기심에 온갖 악행에 혼란입니다.

끊임없이 욕정에서 솟아나오는 분쟁에 다툼이요 싸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예고 후

그분을 따라가면서 길 위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의 문제로

논쟁을 벌였던 열두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오늘 복음의 핵심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첫째가 되려고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지혜를 받아 순수하고 겸손해지면

저절로 꼴찌의 이름 없는 자리를 찾기 마련이며,

기꺼이 모든 이의 종이 되기 마련입니다.

모든 이의 종이 된 가장 낮은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주님을 뵈옵기 때문입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입니다.


자랑하려거든 내 자랑하지 말고 하느님 자랑 하십시오.
땅과 하늘,

온 누리에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찬미하라 좋으신 하느님을,

  그 이름 노래하라 꽃다우신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찬미할 때

샘솟는 기쁨에 충만한 천상지혜요,

겸손하고 진실한 의인의 삶입니다.


악인들의 어떤 시도도 그를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나름입니다.


어느 사람들에게는

독이 될 것도 의인들에겐 약의 되고,

온갖 모욕과 고통도

그들의 믿음만 순수하고 견고하게 할 뿐

그의 몸과 마음 조금도 다치지 못합니다.

의인들의 생명을

하느님께서 친히 받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저는 미사 중

성찬기도 3양식 마침 영광송 전의 기도를 참 좋아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온갖 좋은 것을 다 베풀어 주시나이다.”


우리가 받는 모든 좋은 것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옵니다.

 

사람 눈에 해롭고 나쁜 것들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걸러지고 정화되어

우리는 좋은 것들만 받게 됩니다.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는,

전화위복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받으십시오.

이게 바로 겸손이지 지혜입니다.
악마의 그 무슨 교활한 시도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참 좋은 살아있는 보물은 하느님 하나뿐입니다.


이 좋은 보물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 거짓보물들을 참 보물인양 착각하여

아까운 인생 헛되이 소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참 좋으신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천상지혜와 평화를 선사하셔서

겸손한 의인들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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