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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1) 루오의 예수님 / 전 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5 조회수682 추천수6 반대(0) 신고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성화(聖畵)를 통하여 복음을 묵상하는 방법을 연구할 때였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어느 신부님께 복음묵상에 도움이 되는 그림을 부탁드리자, 그분이 저에게 보내온 첫 그림이 조르주 루오의 작품이었습니다.

 

거칠고 두툼한 묵색 선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깊은 침묵이 흐르는 캄캄한 밤에 달빛에 비치듯 예수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채찍질 당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누군가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허물어질 듯 서 있는 처연한 예수님 모습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 마음 깊은 곳 어디엔가 현존해 계시는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루오의 단순한 이 흑백 그림은 순간순간의 느낌과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루에도  숱하게 무너지는 연약한 신앙의 나를 지탱하기 위해 내 안에서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서 있는 예수님 같기도 하고,

매일매일 잘난 척 너스레를 떨며 살아가는 삶의 껍데기를 벗겨낸,

허약하고 보잘것없는 본래의 나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가 처음으로 만난 루오의 흑백그림은 내 안에서 또다른 나의 모습으로 나를 지탱하고 서 계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때 이후 이 그림의 잔상이 제 마음 어디엔가 스며 있어 수난의 예수님을 묵상할 때마다 떠오르곤 합니다.

 

얼마 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240 여점에 이르는 루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르주 루오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은 진작 들었지만 좀체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전시회 마지막 날 오후에야 부지런히 차를 달려 루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루오의 그림은 그의 생애를 정돈해 놓은 것처럼, 그의 어린 시절부터 만년에 이르는 작품들이 연도별로 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한 예술가가 살아온 내면의 역사를 들여다보듯 조심스레 그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그림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길을 가다가 전시회가 있는  화랑(畵廊)이 있으면 비록 이름이 낯선 화가의 작품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종종 들러보곤 합니다.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에 저는 나름대로 엉터리 미술 감상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작가의 작품 의도와 메시지를 읽어 내고 색채와 구도를 보면서 작품을 감상할지 모르지만, 저는 그림을 보면서 일어나는 내 마음에 주로 관심을 둡니다.

 

조르주 루오의 전시회를 둘러보는 시간 역시, 저의 내면 속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여정이었습니다.

 

루오가 그린 작품에는 주로 창녀와 서커스의 유랑배우, 가난한 사람들, 법정의 판사와 예수님 등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그림은 색채와 선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두툼하고 투박하여 사람의 마음 속에 스며 있는 비밀들을 마치 빛을 투과하여 사진을 찍어 낸 듯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마음 속에 녹아 있던 다양한 색깔의 물감들이 마치 화학반응을 하듯 여러 모양으로 다시 모아져서 나의 내면의 얼굴을 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자기가 아닌 자기를 살아가는 광대였다가,

어둡고 죄스런 얼굴의 창녀가 되기도 하고,

주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가련한 인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루오의 그림을 통해 본 내 안의 온갖 부끄러운 자화상들은 다시 수난의 예수님 얼굴 안으로 용해되고 맙니다.

 

사실 루오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얼굴들은 표정과 분위기만 다르게 표현했을 뿐 루오의 자화상을 닮은 하나의 얼굴로 느껴집니다.

어쩌면 루오가 일생동안 그린 그림은 참된 자기 본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한 습작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자신의 유일한 소원은

'보는 사람이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을 그리는 것'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그가 만년에 이르도록 그토록 그리고 싶어했던 예수님은 다름 아닌,

아름답고 숭고한 예수님을 닮은 자신의 참된 자아의 얼굴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루오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인파도,

어쩌면 그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루오의 그림을 통해 자신들의 아름다운 참모습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가을의 빛깔이 울긋불긋 아름다운 것은 여름나기를 끝낸 푸르른 나뭇잎들이 저마다 자기 안에 있는 본래의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의 빛깔은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들의 참모습이 드러날 때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떠도는 수많은 색깔들이 때론

세리로,

창녀로

율법 학자로

나병 환자로........  우리들의 얼굴을 그려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거룩하고 숭고한 하느님이 주신 본래의 자기 모습을 우리 삶을 통해 그려내는 데 있습니다.

조르주 루오는 그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찾았습니다.

 

전시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그림 앞에서

'루오를 닮은 그분'이

루오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그러자

'그분을 닮은 루오'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바로 당신입니다." 라고.

 

언젠가 내 삶이 세상에서 전시(展示)를 끝내는 마지막 날,

내 삶 속에 그려진 마지막 그림 앞에서 루오가 받은 똑같은 질문을 받을 것만 같습니다.

 

그때

'나를 닮은 그분'이

내게 낯선 분이 아니길 바라고 있습니다.

 

                  ㅡ 말씀지기 : 편집자 레터 전문(全文) ㅡ

 

       < 글쓴이 : 말씀지기 주간 : 전 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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