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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 마리아는 우리들의 어머니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6 조회수1,349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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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내 어머니. 그분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도 아니시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인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 가슴속에서 결코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어머니를 잊을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는 다른 이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내 어머니'라는 감정도 있지만, 단순히 나를 낳아주셨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바로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시고 헌신적으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웠고 힘들었는가는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정도차이가 있었겠지만, 공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께서 가정을 지키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 어려운 시기를 우리를 데리시고 몸소 헤쳐나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더욱 더, 어머니는 내 어머니이시다. 어머니는 단순히 나를 먹여주고 도와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바로 내 어머니이시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어머니이시다. 더욱 더 특별한 의미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그리고 간절해질 때마다 우리가 찾는 어머니가 바로 성모 마리아이시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제자들로 구성된 우리 교회 신자 모두에게 안겨주신 어머니이시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들 보시고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6-27)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아버지를 안내해 주신 구원의 길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에게 어머니로 주셨다.

우리 교회는 성모 승천을 기념하면서 우리도 성모님처럼 마지막 날에 주님께로 불려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정녕 우리가 따라 걸어가야 할 모범이며 또 우리 마지막날의 희망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성모님의 생애를 되돌아볼라치면 정녕 마리아는 우리의 인생고를 방불케 한다. 마리아는 정말 누구 못지 않게 절망의 순간들을 겪었던, 절망의 여인이다.

성모님은 요셉과 결혼하기도 전에 임신하는 곤란을 겪었다.(루카 1, 26-38)

성모님은 떳떳이 남에게 자랑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해야만 했다.(마태 1, 18-25)

그리고 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까지 만삭의 몸으로 고통스럽게 내려가야 했다.(루카 2, 2-5)

그리고 예수 아기를 낳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첫아들을 말구유에 눕혀야만 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면서도, 호강은 커녕 오히려 처절한 빈곤과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루카 2, 6-7)

그리고 아기 예수를 낳은 후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은 지가 무섭게, 헤로데의 검은 손길을 피해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한 채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마태 2, 2-18)

그리고 예수 아기를 성전에 바치는 봉헌절 축제에도 성모님은 시메온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들어야 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카 2, 35)

그리고 명절이 되어 성전에 올라갔을 때에도 어린 예수를 잃어버려 3일이나 찾아 헤매야 했고, 겨우 찾았는데도 정작 아들 예수는 오히려 성모님을 당황하게 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 50)

그런가하면 다 자란 아들 예수가 직업이나 가정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성모님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행동에 근심이 가득해야만 했다.

성모님은 아들이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마르 3, 30)는 소식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리고 또 급한 마음에 아들을 찾아 나섰을 때 오히려 아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르 3, 33) 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아들을 믿지 못했다는 이유로 망신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가하면, 아들 예수의 기적은 순간이요, 대부분의 공생활 기간 동안 여러 각도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 되었을 때 어머니로서 그 억울함과 안쓰러움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앞에서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겪어야만 했다.

성모님은 자기 자식이 그야말로 무슨 죽을죄라도 지어서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모함을 받아 죽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자기가 대신 죽고 싶은 고통과 절망을 느꼈다.(루카 23, 13-25)

성모님의 자기의 자식이 사람들의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 그리고 매를 맞아가면서까지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을 오를 때 그걸 멀쩡한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루카 23, 26-32)

성모님은 결국 자기보다 먼저 자식이 죽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루카 23, 44-46)

성모님께서 죽은 아들을 품에 앉았을 때, 그 절망이 오죽했겠는가?(루카 23, 53)

성모님께서 죽은 아들을 무덤에 묻을 때, 그 심정은 아들과 같이 죽고만 싶지 않았겠는가?(루카 23, 53)

성모님의 일생 중에 겪으셔야했던 절망이 그처럼 컸기에 그 절망을 이기고 일어선 성모님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그 절망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이었다.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말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카 1, 45) 그 믿음이 성모님을 오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주님의 품안에 안기게 해주었다. 성모님처럼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그 영광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바가 아닌가? 성모님께서 우리 희망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성모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곧 새로운 이스라엘인 우리 교회의 믿는 이들을 위해 어머니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계시다. 하늘의 어머니로서. 그분은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성령께서 오시기를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면서 사도들의 어머니이셨듯이 오늘 하늘에 올라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어머니이시다.

인생의 모든 절망을 믿음으로 극복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성모님을 기억하면서 함께 성모송을 바칩시다. 우리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성모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 심흥보신부님의 글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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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모든 가족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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