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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2) 아! 내 몸에 못을 박는구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6 조회수715 추천수9 반대(0) 신고

 

 

"이제 심습니다."

하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고 이어 곧 내 잇몸 뼈에 드릴로 구멍 뚫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아! 드디어 내 몸에 못을 박는 구나!

 

입만 나오게 구멍 뚫은 녹색보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가슴에도 배 위에도 같은 색의 보자기를 덮어놓은 속에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한다.

앞으로 모아쥔 손으로 묵주반지를 붙잡고 기도로 매달린다.

"주님! 성모님! 제발제발 무사히 끝나게 해 주세요."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그 고통은 어떠했을까? 에 대해서였다.

 

치과병원 수술대 위에서였다.

지난 주 수요일 나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있었다.

뼈를 깎는 아픔이란 말도 있는데 하물며 뼈에 못을 박는데 어찌 아프지 않을까!

하지만 사실은 마취를 해서 그런지 그리 아프진 않았다.

다만 드릴로 뼈를 뚫는 진동으로 머리가 흔들리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랑니 두 개와 어금니 두 개 도합 네 개의 발치를  하고 나서 바로 수술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드릴로 잇몸 뼈에 구멍을 뚫고 쇠심을 박는 중이었다.

 

작년 9월에 처음 그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후 1년을 벼르고 별러 결심을 굳히고 선택한 시술이었다.

무섭고 두렵고 혹시라도 부작용은 없을까 의심도 하면서 일년을 보내다가 더 이상 아픈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의사가 아들과 잘 아는 사람이고 그 의사가 임플란트 시술에 임상경력이 많다는 것과 시술 받은 아들친구들 부모님들이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려운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두어번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받고, 사진 찍고, 오른쪽 사랑니를 발치하는 일을 했는데,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왼쪽이가 더 심하게 아파져 왼쪽부터 시술을 하게 되었다.

 

오후 세 시에 수술대 위에 올라가 수술이 끝난 시간은 네 시 반이었다.

한 시간 반을 수술대 위에 있었던 것이다.

드릴로 세 군데 뚫고 세 개의 심을  박았다.

그러고 나서 수술 부위를  꿰매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고 목으로 물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 그리고 공포감을 빼면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취가 깨기 시작하면서 그날밤부터 고통은 시작되었다.

신열이 나고 열이 나니 머리가 깨어지는 듯하고 치통까지, 약을 제때 먹고 얼음찜질을 계속해도 참으로 참아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알았다면 하지말걸, 하는 후회만이 들었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가 되면서 조금씩 열이 떨어지고 두통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마 이를 너무 한번에 여러개 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머니가 절대로 이는 한꺼번에 여러개 빼면 안된다고 하시더니....

병원이 너무 멀어 공부해야 하는 아들 운전시키기가 어려워서, 수술대 위에 여러번 올라가는 게 두렵고 마취약 자꾸 쓰는 것도 싫어 횟수를 줄여보자는 생각에서, 그리고 요즘은 마취약이 좋아 한번에 여러개 빼도 괜찮다는 의사의 말에 왼쪽 이를 한꺼번에 하자 했더니......

 

얼마나 혼났던지 아무래도 오른쪽 이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일로 나는 새삼스레 깨닫고 느낀 것이 있다.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 때 그동안 놓고 있던 묵주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레지오를 그만두고 나서 별로 묵주기도를 하지 못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묵주를 들고 기도하며 잠시 눈을 부칠 때도 묵주를 꼬옥 손에 쥐고 잠을 청하는 자신이었다.

그리고 평상시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리며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래서 고통은 주님께로 성모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계기가 되고, 신앙의 담금질로 주님께 향하는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늘 즐겨 쓰는 표현인데, 빨갛고 뜨겁게 달구어진 대장간의 쇠가 찬물에 담궈지고 또 달구어졌다가  다시 찬물에 식히는 담금질을 거듭하면서 더욱 강한 쇠가 되듯이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몸이 편할 때, 내 마음이 평안할 때는 주님에 대한 마음이 그리 간절하지 않다가도 내가 견디기 힘든 마음의 고통이나 육신의 고통에 처했을 때는 그렇게도 간절하게 애타게 그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얼마나 몸이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던지 그 좋아하던 컴을 5일 동안 열지 못했다.

내가 지금 글을 올리고 있는 걸 보던 아들이 컴 하는 걸 보니 이젠 좀 덜 아픈가 보다고 놀린다.

 

뱃가죽이 쓰리도록 배가 고파 본 사람이 배고픔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내 몸이 죽도록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의 뼈에 쇠를 세 개나 박는 고통을 겪었으니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님의 아픔과 고통을  아주 쬐끔은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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