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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사람은 누구인가?'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7 조회수594 추천수5 반대(0) 신고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루가 9,7-9)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하고 더러는"엘리야가 나타났다."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예수는 누구인가?"라고 다시 한번 물어야 한다.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의견이 다양한 것처럼 오늘도 사람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들도 다양하고 또 그리스도 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들도 다양하다. 각자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만큼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따른다.

 

요한 세례자는 자기의 생명까지 바쳐가면서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헤로데는 자기의 권좌에 대한 위협을 받을까봐 일찌감치 두 살 아래의 어린 예수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열 한 제자는 끝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유다는 자기의 이상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스승인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예수님을 따르던 "헤로데의 집사 쿠자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루가8,3) 그리고 다른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을 시중들었지만, 부자 청년은 예수님한테 영원한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도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슬퍼하며 떠나갔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생의 전부였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겼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오늘 복음은 교육적인 면이 강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 말을 듣고 성당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우리 안에서 예수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의심이 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 때문에 내 생활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바오로처럼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필립 3,7-9)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만일 아직까지 바오로처럼 성숙된 신앙 고백과 생활을 할 수 없다면 우리도 헤로데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즉 "회개하라."는 요한 세례자의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 한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했어도 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복음을 읽었어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8,10)
  
죄란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고 말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면서도 예수님을 안다고 한다든지 전혀 예수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만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엘리야, 옛 예언자 한 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 난 분"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것들이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무지는 어리석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올바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올바른 생각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우리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바치셨다.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 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발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 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에페 1,15-19)

 

헤로데는 많은 소문을 들었지만 제대로 알아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 진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아예 요한의 목을 벤 사람이었다. 요한의 목을 자름으로써 진리의 소리, 선구자의 소리를 아예 단절시켜 버린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이 누구이신 가를 알고 싶으면 우리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 밖에서 떠도는 소문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그런 소문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단절할 때 우리의 신앙은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너희 하느님 야훼를 찾아야 한다. 애타고 목마르게 찾기만 하면 그를 만날 것이다."(신명 4,29)라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애타고 목마르게 찾을 때 비로서 예수님이 누구이신 가를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법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12,30)사랑해야할 분이시다.

 

이토록 우리의 온 존재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듯이 또 예수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그 중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게 되자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내려보냈듯이,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부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르5,28)하고 옷을 만져서 치유되었듯이 적극적인 자세로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이들만이 예수님을 올바로 알게 되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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