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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명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9 조회수603 추천수9 반대(0) 신고

                         

                                 변명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보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창녀 '소냐'가 나온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대목이 있는데 소냐가 침대에서 성경을 읽으며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성경을 읽는 이유에 대해 말해줄 때다.


 "비록 몸을 팔고 있지만 예수님을 잊지는 않고 있다"는 소냐의 대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추잡한 곳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신앙의 본능'.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신학교에 입학하려고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였다.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대뜸 소설 속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창녀촌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 줬다. 그 친구는 나오려는데 몸 파는 여인이 '아이 우유 값을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 털어 주고 왔다는 것이었다. 몸을 팔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본능'.


 예전에 철이 덜 들었을 때 어머니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나가시는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 한 적이 있었다. 시장 주변에 가는 일이 있으면 일부러 어머니가 계신 곳은 피해 다녔다.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가끔 장보따리를 들고 장에 가시는 어머니를 만날까봐 마음을 졸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피하고 숨어 다녀도 어머니가 항상 그곳에 계신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홀어머니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새끼에 대한 본능'.


 시간이 흘러 한 공동체를 책임진 사목자로서 밑바닥 삶들을 이해해간다. 그리고 그분들의 삶에 많은 모순이 있음을 인정한다. 윤리적으로 모순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여인들, 자식들 때문에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어머니 앞에 놓인 많은 모순과 항변 앞에 머리를 숙인다. 예수님의 아픔과 축복이 동시에 공존했음을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라면 벌써 깨달았을 것을 40줄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이해하는 것이다. 말이 될지 모르지만 속칭 '앵벌이'를 하고, 때론 내 자신을 몰라보는 거리에서 장사를 하기도 하고, 참외를 싣고 공판장에 들락거리면서 수군거리는 것 같은 느낌과 눈초리를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사목자로서 내 길이라고 항변한다. 비록 사제로서 비웃음 속에 내몰릴지 몰라도 내 속에는 지울 수 없는 그분이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아직도 당신들을 위해서 부족한 내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채찍을 후려쳐 본다. 나의 본능이 당신들의 본능을 따라갈 때까지….


                 - 김호균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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