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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절초를 바라보며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9 조회수834 추천수15 반대(0) 신고
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요한 1장 47-51절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구절초를 바라보며>


올봄 깊은 산중 퇴비더미 위에 심어놓은 호박을 따러갔습니다. 큼지막하고 누렇게 잘 익은 호박덩이들이 여기저기 보물처럼 숨겨져 있었는데, 정말 신기했습니다.


모종 좀 가져다가 여기 저기 심어놓았을 뿐인데 호박잎이 지천으로 피어나 주변을 덮더니, 엄청난 수의 호박이 생겨나는데, 자연의 힘이 놀라울 뿐입니다.


다 좋았는데, 운반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늙은 호박의 무게가 엄청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차가 접근하기 힘든 곳이었기에, 큰 자루에 담아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비틀거리다가 몇 걸음 못가서 쓰러지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중간쯤에서 자루를 내려놓고 잠깐 쉬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구절초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있었습니다.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아주 가까이서 구절초를 바라보니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우선 도로변에 핀 구절초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에 만개한 구절초 무리를 바라보며 천사들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다!’하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는 꽃, 약간은 슬프면서도 기품이 넘쳐흐르고,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그런 신비스런 분위기의 꽃이었습니다.


누가 눈길을 주던, 주지 않던, 누가 인정해주던, 인정해주지 않던, 있음 자체로 행복한 존재, 언제 어디서든 온 몸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재, 홀로 있어도 늘 떳떳하고 의연한 존재...


오늘 우리는 세 대천사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천사란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해주는 영적인 존재, 하느님 구원사업에 조력하는 도우미,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느 정도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로 해석됩니다.


인간관계 안에서도 ‘천사’란 말을 자주 사용하지요.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면 어느새 나타나는 고마운 사람, 상황이 종료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 온 몸으로 하느님의 향기를 풍기며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천사 같다’고 말합니다.


첨단과학의 발전과 고도성장의 여파로 영적인 영역이 자꾸만 축소되어만 가는 요즘, 사심 없는 봉사에 열심인 사람들, 이웃을 내 몸처럼 여기며 다가가는 사람들, 고통 받는 이웃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나마 되찾게 만드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천사들입니다.


제 인생에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분들 안에 현존해계셨던 하느님, 그분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천사로 다가오셨던 모든 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 뇌리에 ‘당신은 정말 천사였소!’라는 인식이 각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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