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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지병철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29 조회수68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탄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을 때, “누가 감히 하느님처럼 구느냐?”라고 호통을 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 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성경에 나오는 3대 천사의 하나입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권세’, ‘하느님께서 당신을 권세 있는 분으로 드러내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 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 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Amen, amen, I say to you,
you will see heaven opened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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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정직한 이스라엘 사람 나타나엘에게 하늘이 열려 있고, 또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세상에는 생명이 없는 무생물도 있고, 생명은 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움직이는 생명체이지만, 인간과 달리 정신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한 동물도 있습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물려받아 몸은 없지만 순수한 정신적 존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간보다 더 닮은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천사라고 부릅니다. 이들 가운데는 인간을 나쁜 길로 이끄는 악마도 있고, 좋은 길로 안내하는 하느님의 사자로서의 천사들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고, 우리를 악한 길로 이끄는 존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오늘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데려 오는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을 먼저 본 사람이 필립보이고 또 그 예수님의 참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그것을 나타나엘에게 전해준 사람이 필립보인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필립보에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고 나타나엘과는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신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먼저 오고 알아보았던 필립보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씀 같은 걸 안하시고 나중에 온 나타나엘에게만 말씀을 거셨을까...


   요한복음을 보면 이런 비슷한 경우는 또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하고 안드레아인데 안드레아가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형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왔던 안드레아 한테는 아무것도 안해 주시는 반면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비록 안드레아가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아의 이름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안드레아의 이름도 뭐 거창한 것으로 바꿔 줬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필립보나 안드레아의 입장이었다면 한번쯤 “예수님, 왜 제 이름은 안 바꿔주십니까?” “예수님, 왜 저한테는 말씀을 안 걸어주십니까? 너무 불공평합니다. 제가 먼저 예수님께 왔습니다. 왜 시몬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시고 나타나엘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해 주시면서 나한테는 안 해 주십니까?  나도 이름지어주시든가... 뭔가 의미심장한 말씀 같은 걸 해 주십시오.“ 라고 했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질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첫 번째가 아닌 것은 또 있습니다. 천사들에 비해 늘 뒤지는 바로 우리 사람들이지요. 천사들 보다 못하게 만들어졌고 케루빔인가 세라핌인가 하는 천사들은 하느님 곁을 날아다니는데 우리들은 하느님 구경 한번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천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 가신게 아니라 늘 뒤처지는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이지요. 만고 제 생각이지만 억지스럽게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먼저 보다는 나중에게 더 관심을 가지시고 무언가를 더 해 주시는 듯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못 따라가서 그런 거지 안드레아나  필립보나 대천사들이 나쁘다는 거나 그렇게 먼저 예수님을 보면 안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대신 이 두 번째의 영성도 한번 묵상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첫째가 되기를 좋아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둘째가 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해 주실 겁니다. 시몬은 둘째였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반석이 되는 문제를 제시하셨고 나타나엘도 둘째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하느님의 집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지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우리 사람들에게 씌워주셨습니다.


   언제나 첫째가 되려 하는 이 세상에서 한번쯤은 느긋하게 둘째가 되어보심은 어떨 런지요...


                                   - 지병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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