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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30 조회수74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Pay attention to what I am telling you.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Lk 9.44)




 

제1독서 코헬렛 11,9─12,8

 

복음 루카 9,43ㄴ-45

 

어떤 사람이 담장 밑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나뭇가지가 담장을 넘어와서 그늘을 만들어 채소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담장을 넘어온 가지를 잘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옆집 주인은 나뭇가지를 자르면 볼품이 없기 때문에 자를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은 두 사람 말을 듣더니 재판을 하루 늦추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재판정에서 나뭇가지를 자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판결을 하루 늦췄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재판장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나뭇가지를 자르도록 판결하려고 했는데 우리 집 나뭇가지가 옆집에 넘어가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어제 집에 가서 가지를 자르고 와서 오늘 판결을 한 것입니다.”

남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면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하는 법이지요. 그리고 이 모습이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남은 올바르고 조금도 거짓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왜 이렇게 관대할까요? 이렇게 자신의 관점대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랑이 가득 담긴 주님의 메시지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바로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시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사람들이 쓰는 언어인 아람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뛰어난 학자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단어를 써 가면서 말씀하셨나요? 모두가 아닙니다. 그들이 알아듣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계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더군다나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러한 분이 어떻게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다는 것입니까?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보고는 모두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처럼 살기 시작합니다. 즉,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용기 있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십니까? 사랑이 가득 담긴 그 메시지가 이해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사랑이 담긴 착한 일을 합시다.



 
아름다운 것들을 끝내 보지 못보고(이해인, '기쁨이 열리는 창' 중에서)

 

어쩌면 아름다운 것들을
바로 곁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으로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듯하다.

음악을 듣다가,
그림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사람을 만나다가,
항상 새롭게 감동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움을 향한 그리움을 키워가야겠다.

 

 
 

이 병 우_차가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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