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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3 >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2)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2 조회수88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2)



   내 방에는 빗이 여러 개 있다. 그렇다고 내가 빗 수집가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여행할 때마다 빗을 챙길 줄 모르는 건망증 때문에 그때마다 현지에서 구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건망증이 참으로 심하게 되었다.


   서울의 모 수녀원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세수를 하는데 빗이 없었다. 춥다고 가뜩이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 탓에 머리가 엉망이었는데 빗이 없으니 아주 낭패였다. 갑자기 어디 빌릴 짬도 없어 방금 양치질을 한 칫솔로 머리를 여러 번 문대고 보니 그런 대로 가닥이 좀 잡히는 듯했다.


   미사 시간이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인사를 할 때마다 수녀님들이 킬킬대며 웃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불안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때마다 손을 살짝 올려 머리를 매 만지곤 했으나 마음이 온통 불안하여 이게 미사를 드리는 건지 헤어 쇼를 하는 건지 거룩한 전례가 아주 엉망이었다. 어떻게 미사를 끝냈는지 모른다.


   미사 후, 일이었다.

   미사 중에 있었던 사건(?)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건 더 창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칫솔로 머리빗은 사실을 실토했더니 수녀님들이 배꼽이 빠지라고 웃는데 정말 ‘쪼다(?)’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녀님들이 미사 때 웃은 것은 그냥 호감의 표시였지 다른 뜻은 없었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공연히 ‘칫솔’ 사건을 입 벌려 망신만 당했다.


   그리고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나중에 짐을 챙기다 보니 가방의 작은 포켓에 빗이 두 개나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가끔 그랬듯이, 마치 신발 닦는 칫솔로 이를 닦은 심정이었다. 어디 그런 일들이 한두 번 일까마는, 늙지도 않아서 건망증이 심하니 부끄러울 때가 가끔 있었다. 전에 시골성당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는 한참 모내기철이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산 넘어 ‘밤골’이라는 마을에 회갑을 맞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래서 본당의 몇 자매들과 함께 오후 5시에 그 집에 가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는데, 천상 걸어서 가야 하는 그 거리는 시간만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들에 나가 신자들 논에 모를 심으며 술을 몽땅 마셨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몸에 술가지 과하게 마셨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사제관에 돌아와서는 저녁밥도 거르고 낮잠인지 밤잠인지 분간을 못하고 잠을 자는데 왠지 사제관 앞마당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취했기 때문에 그냥 덮어 버리고 잠을 잣는데 나중에 눈을 뜨고 보니 밤 9시였다. 그리고 그때 퍼뜩 생각이 났다!



   맞다! 회갑미사를 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버려 이제 막 서둘러 간다 해도 밤 10시가 돼야 미사를 해야 하니 참으로 갑갑한 일이었다. 그래도 허둥지둥 성당에 들어가 준비하고 나오니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할머니들이 비로소 얼굴을 내밀면서 당신들은 오후 4시부터 오셔서 내가 잠이 깨기를 기다리셨노라고 하셨다. 보통 사건이 아니였다.


   미안 하다는 인사를 할머니들께 열 번, 백 번하면서 달도 없는 산길을 넘어가니 회갑 집에서는 좋아서 난리가 났다. 이 밤중에 신부님이 잊지않고  오셨다고 그 마을의 신자들이 다 나와서 얼마나 기뻐하는지 밤에 벌어진 잔치가 더 풍성했다. 좌우간 그 날 10시에 축하미사를 하고는 또 술을 마시고 밤 자정이 넘어서야 그 집을 떠났다.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그랬다. 비록 약속이 늦긴 했어도 잊지 않고 찾아 주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마을 신자들이 모두 산꼭대기 까지 따라 나와서 나를 전송을 했다. 그때 내가 비록 실수를 했지만 그 실수한 밤이 얼마나 따뜻하고 은혜로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따뜻하기만 하다.


   그래도 건망증은 유쾌한 것이 아니다. 바로 엊저녁이었다.

   제의방에서 미사 전에 옷을 입다가 문득, 미사 후에 레지오 교육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헐레벌떡 사제관으로 뛰어갔으나 막상 사제관에 도착해서는 내가 뭐 때문에 거기가지 뛰어 왔는지를 몰라 멍하니 섰다가 그냥 돌아와 미사를 드리는데 뭔가 이상하게 불안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사제관까지 갔는지를 몰랐다.


   영성체 후 묵상에 이르러서야 퍼뜩 레지오 교육 생각이 나서는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사제관에 달려가 교본과 출석부를 가져왔으나 사람들이 왠지 교육받을 생각을 안 하고 미사가 끝나자 그냥 나가는 것이었다. 이건 데모도 뭣도 아니오 본당신부에 대한 대단한 도전이요 반발이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면서 나무라듯이 말했다.


   “왜 교육도 안 받고 나갑니까?”

   그러자 자매들이 ‘별놈 다 봤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만 웃으면서 대답했다. “레지오 야외 행사 때문에 교육이 없다고 신부님이 지난주에 말씀하셨잖아요!” 이쯤 되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예수님, 제가 이렇게 삽니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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