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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을 낮추는 이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2 조회수798 추천수2 반대(0) 신고

 

<자신을 낮추는 이>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


   지난해 겨울 새벽에 일어나 미사 참례를 하려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데, 주차장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것을 즐겁게 감상할 여유도 잠시 뿐, 곧 자동차에 덮인 눈 생각이 났습니다. “깨끗이 치우려면 미사 시간에 대기 어렵겠군, 그럼 걸어서 갈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제 자동차를 한번 쳐다 본 순간,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누가 치워 주셨지? 산타가 벌써 오실 일은 없고.

  성당에 늦지 말고 따뜻하게 다녀오라는 경비 아저씨의 배려라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만, 오늘 따라 친절한 아저씨가 산타처럼 느껴지는군요.

 제가 이 나이에 어디서 산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이 나이엔 산타 노릇도 못하는 처지 아닐까요. 애들은 다 컸고, 손자 볼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 조카들도 없으니 말입니다. 오랫동안 산타 할아버지를 내 기억 속에서 지운 것이 새삼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잔잔한 기쁨 속에서 운전을 하며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건강과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 차를 직업 훈련원에 주차하고 성당에 올라가려 나무 계단을 본 순간 또 누군가가 깨끗하게 눈을 치워 놓았더군요. 혹시나 미끄러져 넘어질까 염려하여 새벽같이 애쓰신 그분에게도 감사와 행복하시라는 기도 올렸습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텐데, 마음 넉넉한 산타 아저씨 덕분에 제가 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긴 대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습니다. 계단부터 시작하여 보도블록 위를 말끔히 쓸었습니다. 아직 어둠이 깔려있는 새벽에 아무도 걷지 않은 보도 위, 쌓인 눈을 그냥 쓸어낸다면  눈이 아쉬워 할까봐 제가 먼저 발자국을 내었습니다. 깡충깡충 오랜만에 아이 적 기분을 내봤습니다. 하얀 눈길에 이리저리 제 발자국이 새겨졌습니다.

  오늘 하루 기분 좋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허리 운동 했습니다. 요즈음 바빠서 운동도 별로 못했는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간만에 백스윙, 팔로우 스윙을 해 봤습니다. 양 겨드랑이를 붙이고 스윙 하는 게 잘 안되어 폼이 많이 망가졌었는데, 오늘 연습해 봤습니다. 백스윙으로 눈 쓸 땐 힘이 제법 있는데, 팔로우 폼으로 눈을 쓸덴 힘이 부족 하더군요. 시원스레 쓸리지 않았습니다. 아, 내 스윙에서 팔로우가 약해 졌구나. 그래서 거리가 줄었군. 눈 쓸며 별 생각 다합니다. 뒤 늦게 배운 초보자 티는 어디서고 낸다니까!


  스윙 연습한다고 생각하며 쓸어 보니 힘도 별로 힘들지 않고, 재미도 있더군요. 그래도 제가 사는 아파트 15동 주위를 웬만큼 쓸고 나니 허리가 뻐근해져 옵니다. 아직도 여기저기 쌓인 눈이 많이 남았는데, 오늘 경비 아저씨들 고생이 심하겠네요. 퇴근 할 때 따끈한 캔 커피라도 사다 드려야 하겠습니다.


  수호천사 축일에 문득 생각나는 경비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를 그려봅니다. 항상 미소를 띠시며 성당에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는 아저씨입니다. 공무원 정년퇴직하시고 아직 힘이 있을 때이니 박봉이지만 힘닿는 데 까지 봉사하겠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들과 딸을 다 여의고 두 내외만 사시는데 집에서 할일 없이 노는 게 더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천주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말씀이나마 저를 보면 다니고 싶어 진다고 하십니다. 저는 웃으며 한번 꼭 나오세요 했지요.

 

  모 광고 카피가 생각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요즘엔 교장 선생님 하시던 분도 주유소나 주차 관리 요원으로 열심히 일하십니다. 젊게 사시려는 그분들의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잘 나가던 시절엔 대접받던 분들이었을 텐데,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애들이 업신여기며 보이는 터무니없는 태도에도 친절하게 응대하시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수그러듭니다. 일하시는 것이 더 보람있다고 하십니다. 묵묵히 일하시는 태도가 더 큰 가르침이 됩니다.

 

  외모와 하는 일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려는 어리석음이 없어져야 할 텐데,  그런 분들이 더 많아져 젊은 애들도 미래에 자기들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본보기가 되어주셔야 할 텐데, 그분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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