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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2 조회수681 추천수3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루가 9.51-56)


  이 대목을 잘 살펴보면 루가 저자는 그 내용을 구약의 여러 가지 사건들과 비교해서 기록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승천은 열왕기下 2,1의 엘리야의 승천과 비교 됩니다. 마음을 굳히는 것으로 해석된 얼굴 굳힘(prospon sterizo)은 이사 50,7의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는 내용과 비교 됩니다. 심부름꾼 보내는 것은 말라기 3,1의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는 내용을, 불을 내리는 것은 열왕기下 1,10에서 엘리야가 취한 행동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러나 루가저자는 또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말하는 분과 전혀 다른 분이시라는 사실을 제자들을 꾸짖는 장면으로 설명합니다. 일부 사본에서 그들을 꾸짖으셨다는 9,55절 이하에 “너희가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 구나,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날카로운 이 질책은 예수님의 통치가 제자들이 바랐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함부로 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 조차 용서하시는 분(23,34)이라고 루가저자는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의 영광 안에 들어가셔서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에 취임하시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길은 예루살렘에서 적대자들에게 당하시는 수난과 죽음을 반드시 거쳐야하는 길입니다.

  그 고난의 길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제자인 베드로가 막는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루가저자는  그 수난과 죽음의 길을 사마리아인들이 방해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니까 방해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하느님의 길을 수용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들이 가장 걷기 싫어하는 길이 바로 수난과 죽음의 길입니다. 용서는 즐겨 받더라도 희생은 원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손해 보는 일과 제 것을 버리는 일을 꿈에도 꿔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길을 몸소 걸으시어 이 길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예수님이 큰 차이가 납니다.

용서(aphesis)하시는 것과 속죄제물(asham)로 살아있는 자신의 생명(nepesh)을 바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르침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누구더러 대신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십자가를 직접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직접 자신의 십자가를 지려할 때 예수님께서 곁에서 거들어주실 것이니 그 십자가는 가벼울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신부님께서 옥수숫대를 가지고 강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기 며칠 전에 이방인들이 그분을 뵙고자 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보입니까? 아마 알아보기 힘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옥수수 알갱이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실 때 그분의 신성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옥수수 알갱이와 옥수숫대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둘을 모두 옥수수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커다란 식물이 한 때는 땅에 묻힌 작은 알갱이였다는 사실이나, 이 식물이 그 알갱이와 마찬가지로 진짜 옥수수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알갱이에서 700여개 알갱이로 엮인 옥수수가 여러 개 달린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부활 전후에 예수님의 몸이 달라진 차이는 땅에 심기 전의 옥수수와 다 자라난 옥수수만큼보다도 더 크게 차이가 납니다.

또 한 가지는 꽃가루가 옥수수수염에 떨어지듯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불어 넣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수정된 옥수수 한 알갱이가 땅에 심어지면 커다랗게 자란다는 것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수정되지 않은 옥수수는 싹트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여러분도 땅에 심어져 썩는다면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제 생각과 다르면 훼방놓으려하고,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불평불만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 언제나 우리가 제대로 주님을 따를 날이 올런지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빌어 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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