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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4 > 괴짜수녀일기 / 단물도 다 안 빠졌는데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3 조회수645 추천수8 반대(0) 신고
 

                  단물도 다 안 빠졌는데

                           

   나는 아무음식이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별종 위장을 가지고 태어난 모양이다. 식사만 했다하면 즉시 만복(滿腹)이 되고 마는 구제불능의 위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식(小食)을 해야만 하는데 그나마도 소화를 시키자면 무슨 대책이 필요했다. 궁리 끝에 생각해낸 상비약이 바로 ‘껌’이었다. ’껌 씹기‘는 특히 난청유아들의 발음 지도과정에 입술과 혀 운동을 위한 감각훈련용으로 필수적인 것이어서 아이들과 이 훈련을 자주 하다 보니 자연히 내게도 습관이 되어버렸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급기야는 아주 경쾌한(?) 소리를 내며 씹는 버릇 까지 생겼다. 특히 이런 습관은 내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부쩍 심해졌는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수녀원에 기숙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았다 하면 껌부터 꺼내 씹기 시작했다. 타국 땅에서 누구와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스트레스를 껌으로라도 풀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하루는 그곳 수녀님 한 분이 나를 붙들고 조심스레 묻는 것이 아닌가. “시스타(수녀님)! 밤마다 시스타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던데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을쎄…, 소리 날 게 없는데요.” 의아한 건 오히려 나였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그 후 9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으니…. 그날도 나는 식후에 속이 몹시 더부룩해서 내 사무실 책상에 앉자마자 또 껌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조금 뒤 서무과 오 수녀님이 들어오시다가 ‘딱딱 따다닥…’ 하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오 수녀님에게 서무과 아가씨가 겸연쩍은 모습으로 내가 있던 교장실을 가리키더라는 것이다.


   오 수녀님은 내 방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는 난리라도 난 듯이 혼비백산해서 소리쳤다. “아니, 수녀님! 이게 뭔 일이에요? 빨리 뱉으세요. 빨리요.” 나는 그 소리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아직 단물도 다 안 빠진 껌이 아깝기도 해서. “금방 씹었는걸요, 뭐”라고 말하고 나니 번개처럼 그 옛날 일이 스쳐 지나갔다. ‘아뿔싸! 일본 수녀님이 얘기하던 그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바로 이 껌 씹는 소리였구나.’ 만유인력에 버금가는 대 발견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미스터리는 드디어 풀린 것이다. ‘아이고 주님! 고맙십니데이.’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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