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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4 > 고추장단지 사건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4 조회수754 추천수11 반대(0) 신고

                        

 

                            고추장단지 사건



   ‘연인’ 이라는 영화를 얼마 전에 보았다. 신문의 광고란에 실린 소녀의 사진이 너무도 청순하게 보여 대단히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짐작을 하며 두 자매와 함께 극장에 들어 갔는데 내용과 장면이 너무도 의외였다. 불륜의 사건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낯뜨거운 장면들이 많았다.


   내용은,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상처를 받고 있는 프랑스인 소녀와 그리고 대단한 갑부로서 나태하고 퇴폐풍조에 젖어든 중국인 청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린 소녀가 대담하게 펼치는 정사의 장면들이 잘리지 않고 그대로 상영된 탓으로 마치 음란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참으로 민망스러운 영화였다.


   화면에서 처음 벌거벗은 장면이 나왔을 때는 굉장히 당황했으며 더구나 함께 온 자매들 때문에 더욱 난처했었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눈치를 보면서 남모르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사 장면들이 거듭되면서 어느새 면역이 되어 버렸고 나중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끝까지 다 관람하고 말았다.


   영화관을 나올 때는 마음이 좀 찜찜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두 자매들 쪽에서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 영화의 내용이 프랑스의 이름난 여류 문인의 자전적 소설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어떤 신선한 충격과 함께 영화에 대한 작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참으로 별일 이었다. 처음엔 그토록 난잡하고 저질로 보였던 내용들이 왠지 순수하고 상큼하게 보였다.


   사람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여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자신의 인격과 인생의 모든 것이 자기에 달려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잘못을 참회의 뜻으로 고백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스러운 악행까지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건으로 미화되어 용서되는 것이다.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다시 대전에 있는 자양초등학교 선생으로 복직이 되었을 때 나에겐 대화를 나눌 절친한 친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학교에서 제일 어렸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나이래야 3년 선배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외톨이 였으며 그리고 숙직이나 일직은 항상 도맡아서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날 친구(?)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 날도 내가 대타로 숙직을 하던 날이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어떤 선배 선생님이 숙직실에 찾아와서는 잠을 청하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그렇다고 물어 보는 것도 서로 거북하고 어색해서 모르는 체했는데 이분이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는 드디어 간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실토를 했다.



   그때는 통금이 있던 때였다. 그가 술을 마시다 보니 통금시간이 넘게 되었고 그래서 단속하는 경찰에게 걸려 파출소로 연행되었는데 ‘선생’ 이라는 자신의 신분이 너무도 창피해서 순경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도망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술이 취했기 때문 이었다.


   파출소는 본래 이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밖으로 드러난 층계를 통해 도망 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리했고 옆집 마당으로 뛰어 달아나는 것이 그 중 상책으로 보였다. 그래서 뛴다는 것이 그만 남의 집 장독대의 고추장단지 위에 떨어져 사건이 더 커지게 되고 말았다. 그 선생은 주인에게 도둑으로 몰려 다시 파출소로 연행이 되었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선생이 밤늦게 까지 술 마시고 통금에 걸린 것도 창피한데 이번엔 파출소에서 도망 가다 도둑으로 몰렸으니 막말로 끝장인 셈이었다. 순경이 신분증 좀 보자고 해서 신분증을 보였더니 선생이 이럴 수 있느냐고 나무라며 훈계를 하는데 그로서는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별수 없이 그 선생은 각서를 쓰고 고추장값을 변상하고 통금해제가 되어 풀려난 것이다.


   나는 그얘기를 들으면서 신나게 웃으며 재미있어 했지만 그러나 이실직고를 안 해도 될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 진실함의 용기에 크게 매료되어 그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모른다. 참으로 묘한 것은, 감추면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고 뉘우치면 그 자체로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잘못엔 위대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 사람과 나무의 "쓸쓸한 연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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