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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꼬마 도깨비 . . . . [닐 기유메트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4 조회수616 추천수9 반대(0) 신고

 

 

 

 

 

 

"주교의 관(冠)과 수탕나귀의 차이점을 아세요?"

 

한밤중에 잠을 깬 니콜라스 펠콘 신부는 두 눈을 비볐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문득 침대 발치에 못생긴 난쟁이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수염이 없고 모자를 쓰지 않아서 그렇지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와 아주

닮아 있었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온 초자연적인 존재만이 낼 수 있는 빛을 발하는

좀 투명한 물체였다.

 

"내 질문에 대답을 해야죠,  바보 양반."

 

이상하게 생긴 그 난쟁이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는 투로 물었다.

 

"누구,  누구냐?  너 하늘나라에서 왔니?"

 

어리벙벙해진 신부가 물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난쟁이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바로 알아맞혔어요,  바보양반.   난 하늘나라에서 왔죠.

 귀찮게 나보고 누구냐고 묻기 전에 나 스스로 내가 누군지 말하겠어요.

 난 당신의 수호 천사예요.

 내 이름은 이자켈이예요.  '하느님이 웃으신다' 는 뜻이죠.

 하지만 중요한건 내 이름이 아니죠.

 중요한 건 내가 당신을 수호하는 꼬마 도깨비라는 거죠."

 

"나를 수호하는 꼬마 도깨비?"

신부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그래요. 나는 당신을 지키는 꼬마 도깨비예요.   뭐 잘못됐나요?"

 

신학적 의문을 해소시켜 주지 않는 이상..

이 표정이 이상한 성직자에게는 소용이 없겠다고 생각한 꼬마 도깨비는

선뜻 삶의 실상, 곧 영적인 삶에 대한 기초 정보를 말해주기로 했다.

 

"바보 양반도 교리 문답 시간에 모든 인간에게는 수호 천사가 딸려 있다고

  배웠겠지요?

  수호 천사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고 하죠.

  다치거나 병나지 않게 해주고...

  영적인 시험을 견디게 해주고...

  뭐 그런 거 말예요.

 

  불행하게도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 꼬마 도깨비들이 바로 그때 끼어드는 거예요.

  인간의 자만심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느님은 사람에게

  꼬마 도깨비를 딸려 주셨죠.

 

  뭐.. 원하신다면 보조 수호 천사라고 부르셔도 돼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의 영적인 풍선을 터뜨려 버리는 거예요.

  알겠지만 팽창된 자아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요.

  하늘나라의 문은 아주 좁으니까요."

 

"하지만... 이때껏 한 번도 너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꼬마 도깨비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하는 말은 들었겠죠?"

"네 말을 들어?"

"그러믄요,  그것도 자주."

"그게 언제였지?"

 

"당신의 보잘것 없는 자아가 부풀어올라 위험 수위를 넘으려 할 때 마다,

  그러니까 당신이 점잔을 뺄때,

  유들유들하게 굴 때,

  독실한 체 할 때,

  근엄한 얼굴을 할 때마다 내가 끼어들어 말했어요."

 

팰콘 신부는 꼬마 도깨비의 말에  다소 찔끔했다.

내가 정말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더란 말인가?

 

" 음,  가능하다면 예를 좀 들어 줄 수 있겠니?

   언제 내 인생에 끼어들어 참견을 했는지?"

 

꼬마 도깨비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 졌다.

 

"좋아요. 바로 어제의 일을 실례로 들지요.

  아침 묵상 시간에 당신은 한 순간 하느님의 존재를 아주 가까이 느끼셨죠.

  기억나죠?

  당신은 기분이 좋아져서 자신의 영적 진보에 대해 자화자찬하려 들었어요.

  그걸 본 내가 어떻게 했겠어요?

  사제 서품식 할 때처럼 마룻바닥에 엎드린 채,

  두 손을 우스꽝스럽게 펼치고서 땅에 코를 박고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죠.

  그 순간 당신은 제 정신을 차렸죠."

 

팰콘 신부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대로였으니 말이다.

기도가 잘 되어 뿌듯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 희극적인 장면이 문득 떠올라

재빨리 망상을 떨쳐버리곤 했던 것이다.

 

"아침 식사 후 당신은 응접실에서 거지 한 명을 만났죠.

  매일 사제관을 찾아와 동냥을 일삼는 거지였죠.

  아침 묵상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는 당신은 평소보다 더 많은 적선을 했죠.

  그리곤 스스로 얼마나 인심이 후한가 하고 칭찬하려 들기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죠?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신다고 믿는 꼬마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당신 귀에다 대고 외쳤지요.

  '나는 착한 아이다.  나는 착한 아이다.' 하고 말이죠. 기억 나죠?"

 

물론 기억이 났다.

도깨비는 계속해서 말했다.

 

"오후에는 낮잠 자고 나서는 좋았던 아침 기분을 싹 가시게 하는 일이

  일어났죠.

  간식 시간에 누군가가 당신의 지난 주일 강론이 형편 없었다고 말한 거죠.

  당신은 우울한 기분을 가눌 수가 없었죠.

  이세상 모든 고뇌를 다 짊어진 것처럼 괴로운 표정을 지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죠?

  멋지게 분장을 하고 테니슨의 '모래톱을 건너며' 라는 시를 몇 구절 낭송해

  주었죠.

  이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던지....

  당신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지요."

 

팰콘 신부는 분명히 그랬었다.

 

"저녁 양심 성찰 시간에 

  당신이 온 인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또 내가 어떻게 했죠?

  바로 한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 시켜 주었죠.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막 시작하려는 찰라

  한 방문객이 사제관 앞에 나타났죠.

  그때 당신이 했던 말,

  '빌어 먹을 놈!   지구를 떠나거라!'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그대로 했죠.

  온 인류를 사랑한다는 당신의 망상을 내가 일격에 없애 버렸던 거예요.

  얼마나 재미있던지..."

 

신부는 거북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자신의 마음 가짐과 실제 행동을 그렇게 면밀히 보고 나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음..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

"당신은 아직도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무슨 질문?"

 

"처음에 내가 물었잖아요.

  주교관(모자)과 수탕나귀의 차이점이 뭐냐구요?"

 

"정말 모르겠는걸."

 

꼬마 도깨비는 고소한 듯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바보,  돌대가리 양반.

  수탕나귀는 꼬리가 하나이고 , 주교의 관은 꼬리가 둘이잖아요."

 

팰코 신부는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천사가 그런 수수께끼로 대화를 시작한 대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신부는 모른 체 했다.

적당한 때 꼬마 도깨비가 스스로 털어 놓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천사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그 순간이 온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나타난 목적을...

  그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다가 문득 나타난 이유를 당신도 알고 싶죠?"

 

"사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지."

 

"이젠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요.

  이유는 간단하니까.

  방금 로마 교황청에서 당신을 주교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어요."

 

팰콘 신부는 이 소식에 너무 기쁜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꼬마 도깨비는 팰콘 신부가 주교가 된다는 그 엄청난 사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정말이예요.

  그 이유는 하느님만이 아시죠.

  어쨌던 당신은 주교가 될 거예요."

 

꼬마 도깨비의 예언에 얼떨떨하긴 했지만,

팰콘 신부의 영혼은 평정을 되찾고 자기 만족감의 물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주교라!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주교라!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꼬마 도깨비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신부의 몸짓을 흉내내며 외쳐댔다.

신부의 속 마음을 훤히 다 안다는 표정으로...

 

신부는 자부심으로 잠시 제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즉시 후회하고,

우물쭈물  말하였다.

 

"대단한 책임을 떠맡는다는 말이지."

 

꼬마 도깨비는 폭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들어 봐요.  신부님.

  당신이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나를 속일 순 없을 걸요.

  주교가 된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 흥분한 게 사실이잖아요.

  바로 그 까닭에..

  지금 부터 당신은 나를 자주 보게 될 꺼예요!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바보짓이란 바보짓은 다 할테니까요.

  무슨 뜻인지 알죠?"

 

"내가 죄인임을 잊고 자만하거나 뽐내는 순간마다 나타나,

  나를 비웃어 주겠다는 말이겠지."

 

"바로 그거예요."

 

신부는 생각에 잠겼다.

주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마다하겠는가?

혹시 성자라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성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잘 살아가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성직자이다.

그래서..

한 단계 더 높은 교회의 직분을 맡음으로써 영성 생활을 위태롭게

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꼬마 도깨비!

  로마 교황청의 제의를 사양하는 편이 낫겠어.

  주교직에 오르면 그리스도인다운 겸손의 삶을 살아 가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아직 그런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

 

"걱정 마세요,  바보 양반.

  당신이 주교직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간에,

  자만심의 유혹을 피할 도리는 없어요."

 

"아니,  주교직을 사양해도?"

 

"그래요.

  주교직을 사양하고 평사제로 남게 되더라도

  그것을 사양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당신의 영혼은 우쭐할 꺼예요.

  '주교관을 마다했으니 나는 얼마나 겸손한가!'

   당신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바보 양반,

   선한 싸움을 하는 것은 어딜 가도 피할 수 없어요.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신분에 속하여 있든,

   그런 유혹은 늘 따라다니죠.

   그러니 사양말고 그 책임을 맡으세요.

   내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 말을 남기고 꼬마 도깨비는 사라졌고,

이를 기점으로 하여 여러 해를 두고 꼬마 도깨비는 팰콘 주교의 일에

간섭을 하곤 했다.

 

마음 속으로 암브로시오 성인이나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견주며

흡족해한다던지 조금이라도 점잔을 빼려 들면,

어느새 꼬마 도깨비가 갑자기 나타나 팰콘 주교를 비웃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한바탕 춤을 춘다거나,

어릿광대의 분장을 하고서 재주를 부린다든지,

아니면 주교처럼 차려입고서 주교관을 쓰고 빙빙 돌리곤 했다.

이럴때면 팰콘 주교는 마음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바보 양반!

  주교관이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수탕나귀보다 꼬리가 한 개 더 많이 달렸을 뿐이니까."

 

이리하여 훌륭하신 주교는 자만심이 부풀어 오르려 할 때마다

그 유혹을 대부분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러서는

하늘 나라의 좁은 문을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꼬마 도깨비가 나타나 뒤에서 살짝 떠밀어 주어서...

 

 

                    

 

                          하느님께 다가가게 해주는 짧은 이야기들         

                       - [영혼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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