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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5 > 괴짜수녀일기 / 슈퍼맨 타령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5 조회수642 추천수8 반대(0) 신고

 

 

 

                        슈퍼맨 타령

                  

                     

 

   공룡과 같은 서울에서 살아가려면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은 되지 못할지언정 아무래도 그 비슷한 체력은 지녀야 할 것 같다. 특히 외출하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대에 걸렸을 경우는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꼬박 6년 동안 종점에서 종점까지의 거리를 전차로 통학했었다. 당시만 해도 전차가 귀했던 시절이라 오랜 만에 한 대가 도착했다 하면 그 전에 아무리 줄을 잘 서 있었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힘센 어른들이 먼저 올라타고 그렇게 몇 데를 놓친 다음에야 나는 가까스로 전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한번은 등교시간이 임박해서 전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렸으나 어느새 나는 전치 밖으로 밀려나고 책가방만 사람들 틈에 끼여 전차와 함께 떠나버린 일이 있었다. 내게는 전 재산인 소중한 책가방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걸 초능력이라고 하는 걸까. 나는 “내 가방, 내 가방” 하고 외치며 그 전차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골인 지점을 앞둔 마라톤 선수 같은 비장한 장면이었으리라. 결국 다음 정류장까지 헐레벌떡 그 전차를 따라가서 책가방을 찾긴 했지만, 지금도 여학생 교복을 입고 달리는 전차를 따라 사생결단의 각오로 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차라리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오늘날처럼 버스나 지하철이었다면 아예 따라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고 별수 있으랴. 실수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을….


   언젠가 만원버스를 탓 는데 그날따라 비가 올 것 같아 수녀원에서 고물우산 하나를 챙겨 들고 나갔던 터였다. 그런데 그 우산이 문제였다. 몇 군데 우산살까지 빠진데다 간편하게 접을 수도 없었던 그 우산의 손잡이는 흡사 도사지팡이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지금은 차내 안내방송이 있어 편하지만 그땐 스스로 알아서 내려야 했기에 빽빽이 서 있는 사람들 틈으로 바깥 풍경에 줄곧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인지 문제의 그 우산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었다. 목적지에 와서 다 와서 내릴 준비를 하며 출구 쪽으로 나오는데 우산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힘껏 당겨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당기기를 여러 차례.


   안쪽에서 “어어” 하며 당혹스러워하는 어느 승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제 서야 우산 당기는 작업을 멈추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더니 내 우산 손잡이는 그의 양복 주머니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고, 그는 우산주인이 검정색 수도복을 입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얼굴을 붉히며 멋쩍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사과를 했고 어떻게 버스에서 내렸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난 그날 내가 힘센 슈퍼맨이 아니라 약하고 작은 자라는 사실에 거듭거듭 감사했다. 조금만 더 힘이 셌다면 그 승객의 양복 주머니는 여지없이 뜯겨져나갔을 테니까.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마리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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