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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재의 힘 ----- 2006.10.5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5 조회수664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0.5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욥기19,21-27 루카10,1-12

                                                            

 

 

 

 

존재의 힘

 

거의 대부분 신자들이 수도원에 상담이나 대화를 하러 올 때,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위로와 평화를 받고 싶어 옵니다.

 

많이 듣기보다는 많이 말하려고 옵니다.

삶에 대해 듣기보다는 삶을 보려고 옵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지지받고 확인받고 싶어 묻습니다.

대개는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욥인데

친구들 정도의 신학 지식이 없었겠습니까?


욥에게 필요한 건 무언의 위로와 격려였을 것입니다.

옆에서 욥의 고통에 공감하며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견디다 못해 터져 나온 욥의 울부짖음 같은 고백입니다.

“여보게, 나의 벗들이여, 날 불쌍히 여기게나.

  자네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처럼 몰아붙이는가?”


이어 욥의 내적 확신이 활화산처럼 불을 뿜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 내리는구나.”


극한 상황의 고독의 와중에서 잡을 분이라곤 하느님뿐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실존적 체험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이라도

내 대신 아플 수 없고,

죽을 수 없고,

십자가를 질수도 없습니다.

홀로 아파야 하고,

홀로 죽어야 하고,

홀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래서 고통과 죽음이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혹독한 시련의 와중에서

욥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은 금강석처럼 빛납니다.


하여 하느님은

우리의 생명,

우리의 희망,

우리의 행복,

우리의 평화,

우리의 사랑,

우리의 기쁨,

우리의 삶의 의미..... 등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하느님’이자 ‘살아계신 그리스도’뿐입니다.

 

이 보다 좋은 복음 선포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모습(icon)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소유물로 무장하지 말고 주님의 평화로 무장하여

이리떼 세상에 평화를 선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소유물의 힘으로 이리떼 세력을 대적하라는 게 아니라

‘존재의 힘’으로, ‘주님의 평화’로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천하장사 골리앗도 소년 다윗의 하느님 믿음의 힘에 의해 쓰러졌고,

천년 로마제국도 ‘그리스도의 평화’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오늘도 참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평화’로 무장하여 이리떼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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