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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6 > 괴짜수녀일기 / 진주를 만드는 아이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7 조회수642 추천수7 반대(0) 신고

                                      

 

                  진주를 만드는 아이들

 

                            

   애화학교 유치부 때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광준이와 정환이가 얼마 전에 나를 찾아왔다. 너무나 껑충 커버린 이 두 청년을 반갑게 껴안으면서 세월의 빠름에 새삼 놀라며, 18년 전의 일화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광준이는 못 말리는 울보였다. 한번 울음을 터뜨려다 하면 온종일 그칠 줄 을 몰랐고 더군다나 떼를 빡빡 쓰며 울 때는 나를 아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울음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어릴 적에 발을 비벼가며 울어대는 바람에 내 발에 왕방울 만하게 돋아있던 티눈이 싹 빠져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친지들 사이에서 전해오고 있으니.


   그건 그렇고 하루는 수업 중에 ‘사이좋게’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두 아이의 어깨를 붙여 보이면서 설명했었다. 그날 광준이 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광준이에게 걸레를 가져 오라고 시켰단다. 그런데 방문을 열고 나간 아이가 한참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마루로 나가보니 광준이는 걸레 두 개를 붙였다 뗐다 하면서 “따이조케, 따이조케” 라며 중얼거리고 열심히 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환이는 자기가 말할 차례가 되기만 하면 으레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걸 알고부터는 그때마다 “변소에 갔다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똑똑히 해야만 보내주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그러니 정환이는 별수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또박뽀박 되풀이 해야만 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이의 어마니가 와서 하는 말이, 여동생과 마당에서 한참 놀고 있던 정환이가 갑자기 여동생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는 “변소에 다녀 오겠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하더니 급히 화장실로 뛰어가더라는 것이다. 마치 자기 상관에게 화장실 출입을 허락받는 군인처럼 말이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나는 우습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작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곤 했다.


   또 미옥이라는 여자아이는 부잡스럽다고 할 만큼 어찌나 손장난이 심했던지. 나는 때때로 “무슨 짓이야” 하면서 주의를 주곤 했었다. 어느 날 체육시간을 마친 뒤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였다. 아무런 의식 없이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한 손으로 빙빙 돌리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무슨 짓이야” 하는 큰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둘러보니 바로 미옥이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엄하게 꾸짖고 있는 게 아닌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한테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 거야”라며 타일러 주었지만, 내심으로는 싱황에 맞춰 아주 시기적절하게 말을 활용한 미옥이가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난청아의 언어지도에 ‘독화(讀話)’ 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보며 그 말을 읽고 대화하는 방법으로 흔히 ‘입술읽기’ 라고 한다. 말을 배우느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겪으면서 자라는 아이들. 그들이 더듬거리며 내뱉는 한 마디의 말은 진주조개가 상처를 안고 만들어낸 아름다운 진주보다 더 찬연히 빛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된 그들을 만나게 되면 난 이것저것 눈치 볼 것 없이 달려가 껴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의연한 인내를 모두 사랑하고 싶다.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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