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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프란시스코에게 말해 봐요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7 조회수688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프란시스코에게 말해 봐요



 


성 프란시스코에게 말해 봐요



  존과 나의 관계는 이스트 베이 병원의 소아과 수련부장이 전화를 걸어오면서 시작되었다.

“문제가 있는 레지던트가 있어요. 똑똑하고 괜찮은 의사인데 이곳의 모든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네요.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기도 하고 자꾸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거든요.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내보려고 해요. 좀 만나주시겠어요? 다루기 쉬운 사람은 아니에요.”

 

그 때 나는 젊은 암환자들 3명을 돌보고 있었다. 건강한 누군가를 상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요.”

나는 그 다음 주초를 약속 날짜로 잡았다. 나는 아마 그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존은 정시에 나타났다. 그는 검은머리의 몸집이 큰 강렬한 인상의 젊은이였다. 그는 구겨진 흰 의사 작업복을 입고 있었으며 목에는 파일럿의 스카프처럼 청진기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마주 앉았다. 그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건넸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존, 안녕하세요?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지요?”

  그가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보낸 거지요. 제가 여기 오지 않으면 레지던트 과정을 끝내주지 않겠대요.”

나는 속으로 시작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존을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시간을 당신에게 준 것입니까?”

  그는 좀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이 상담비용을 대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우리는 서로를 재면서 한참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젊은이에게서 느껴지는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가 드디어 말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드리지요.”

 

나는 그를 향해 몸을 더 가까이 하고 듣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의 문제가 의과대학과 병원의 제도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존은 병원에서 돌아가는 전반적인 상황과 제도에 대해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는 여러 가지 불평을 했다. 병원은 자기들을 일주일에 거의 80시간씩 부려먹으면서 청소부 아주머니들에게 주는 만큼도 월급을 주지 않는다. 선배 레지던트들은 그를 우습게 알고 하인처럼 부려먹는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음식도 형편없다.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도 없다. 수련부장은 병원 경영진들에게 잘 보이려 할 뿐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의 권익에는 관심도 없다 등등.

 

  존은 동료 의사들에 대해서도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이 환자들을 무성의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동료 레지던트 몇 명이 정신 지체가 있는 어린 여자 환자 앞에서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병의 증세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다른 레지던트는 다리가 부러진 유아에게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것을 까먹고는 아이가 너무 어려 통증을 호소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의 동료 의사들이나 병원이나 그의 직업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의 얘기를 듣기만 한 후 다음 약속을 정했다.

 

몇 번의 상담이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대체로 그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존은 자기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다 냉정하고 어리석고 마음이 차고 형편없다고 느꼈다. 그의 분노는 상당히 깊었다. 가끔 그의 감정이 너무나 격렬해져서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하고 말하면서도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마치 화염에 쌓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네 번째 상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는 환자 부모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은 동료 레지던트에 대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환자는 어린아이에요. 그녀는 이 사람들이 놀랐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에요? 그들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데 그녀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그럴 수가 있어요?”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어졌다. 나는 그를 항해 부드럽게 말했다.

“존, 그것이 진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이 아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은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니에요?”

그는 잠시 침묵 속에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늘 일이 이 모양이지요? 왜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지요?”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놀랐지만 침묵을 지켰다. 그는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지만 오열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당황한 그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내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틀림없이 존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가 더 이상 상담을 받으러 올지 나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약속 시간에 그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좋아요. 그러나 이왕 오늘 여기 왔으니 마지막 상담을 하면 어떻겠어요.”

 

그는 잠깐 망설였다.

“이미 상담비는 지불되었으니까요.”

  내 기대와는 달리 그는 쉽게 동의해왔다. 나는 오늘은 마지막 상담이니 어떤 이미지를 사용해보자고 제의했다. 처음에 그는 자기는 과학도이므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거부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것을 허락했다.

“좋아요. 해 보지요.”


  나는 그에게 편안히 앉아 눈을 감으라고 했다. 우리는 몇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점점 그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나는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놀랐다. 몇 분이 지난 후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그가 소아과 의사로서 일을 하는 의미와 고통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존은 즉시 이미지를 떠올렸다. 내가 그것을 묘사해 보라고 하자 자기 나이의 남자라고 했다.

 

  “존, 그가 어떻게 생겼지요?”

  “그는 머리가 아주 길고 수염을 길렀어요.”

  “어떤 옷을 입고 있어요?”

  “하얀 색이요.”

 

나는 그 남자가 존이 입은 것과 같은 흰 재킷에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지 물었다. 

“아니에요. 그는 긴 망토 같은 옷을 입고 있어요.”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샌들을 신고 있어요.”

  “그에 대해 어떤 느낌을 느껴요?”

  “그는 좀 당황하고 있어요.”

  “왜 그가 당황하는지 아세요?”

  “몰라요. 그런데 그는 아주 부드러워요.”

  “그가 부드러운지 어떻게 알지요?”

  존은 내 질문에 언짢은 내색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을 봐요. 그의 눈도요. 그는 정말 부드러워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이것은 너무 당황스러워요. 이제 그만 눈을 뜨겠어요.”

나는 몇 분만 더 참고 그 이미지에 머물러 보라고 격려했다.

“계속 그를 바라봐요. 그가 무엇을 하고 있지요?”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그냥 서 있어요.”

  “계속 바라봐요.”

  “그는 그냥 거기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어떻게 서 있어요?”

  “팔을 앞으로 내밀고 서 있어요.”

  “제게 보여 줘 봐요.”

 

  그는 천천히 자기 앞으로 팔을 내밀더니 손바닥이 위로 가게 했다.

  “좋아요. 계속 그를 바라봐요.”

  “그는 너무 어리석어요. 그는 단지 거기 서서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어요.”

  “계속 바라봐요.”

  “그는 가만히 서서 부드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만 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존이 눈을 감은 채 팔을 앞으로 내밀고 앉아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방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존이 다시 말했다. 자제력을 잃은 목소리였다.

“이 사람은 팔을 내밀고 마냥 서 있을 수 있나 봐요. 영원히….”

  몇 분 간 더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존이 팔을 떨어트리고는 울기 시작했다. 그냥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미어지듯 흐느껴 울었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울었다. 겨우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주 작은 새가 왔어요. 그의 손에 앉아 있었어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눈은 감은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해요.”

 

  그 이미지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임에 틀림없었다. 나 역시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있을 때 성 프란치스코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존의 분노와 고통 속에는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한 희망이 숨어 있었다.

  존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샌 프란시스코에 있기 때문인가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지요. 필경 개인적인 진실이 있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 조금 말해 봐요.”

우리는 그의 과거를 탐험하는 여행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함께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이라는 비디오테이프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테이프를 여러 번 보았다. 우리는 다른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항상 동물들을 사랑했다. 어렸을 때 그는 상처를 입은 동물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돌봐 주곤 했다. 그는 수의사가 되려고 했었다. 그의 아버지가 의과대학에 가도록 해 진로가 바뀌었다.

 

  우리는 생각에 잠겨 함께 앉아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어려워요.”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동의하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알아요. 그러나 조금 쉬워질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요?”

“글쎄, 당신이 본 이미지는 소아과 의사로서의 당신에게 진실하고 적합한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서 앉아 있었다.

“존, 왜 당신은 소아과를 택했지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당신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 동안 제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었지요?”

  “그래요. 그들이 잘못하는 것이 사실일지도 몰라요.”

  “저는 왜 제가 의사가 되었는지를 잊었어요.”

  “그래요, 이제 그걸 알았지요?”

  우리는 조금 더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존, 성 프란치스코에게 말해 봐요. 아무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그는 고개를 끄떡이더니 웃기 시작했다.

“아마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 후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한 2년 후 수련부장에게서 또 다른 레지던트의 문제를 상담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존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존은 아주 달라졌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문제 레지던트를 보내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여자예요.”

존은 아주 헌신적인 특별한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가 그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었을까?

 

 

 

 

 

 

                                               

                                              With solitary my wild g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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