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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 2006.10.8 연중 제27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8 조회수708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6.10.8 연중 제27주일                                                

창세2,18-24 히브2,9-11 마르10,2-16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 수도자들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하느님으로 시작해서 하느님으로 끝납니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 제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


주일인 오늘 새벽 기도 초대송 도입구절에 이어,

다음 우렁차게 울려 퍼진 초대송 후렴이었습니다.


“어서와 하느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 돋우세. 알렐루야.”


과연 하느님의 현존을 온 몸과 마음으로 실감하며

기도를 바치고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지요?

 

머리로  하느님에 대한 지식 아무리 많이 알아도

마음만 복잡할 뿐 하나 도움이 안 됩니다.

 

실제로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지니고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며 깨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 들이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재미로, 무슨 맛으로 살아가십니까?

일하는 재미로, 일 맛으로 살아갑니까?

혹은 먹는 재미, 먹는 맛으로 살아갑니까?
사람 만나는 재미로, 사람 만나는 맛으로 살아갑니까?

혹은 노는 재미로, 노는 맛으로 살아갑니까?

 

좌우간 무언가 살맛이, 살 재미가 있어야지

이런 것 없으면 마침내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슨 재미로,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진정 믿는 자라면

하느님 믿는 재미로, 하느님 믿는 맛으로 살아간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 재미로,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관상가요 신비가이자 세례 받은 우리 모두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재미로,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야

맑고 밝은 몸과 마음에 세상 것들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일을 좋아하되 일에 집착하여 중독되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되 사람에 집착하여 사람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저절로 하느님 재미요, 하느님 맛이 아니기에

열렬하고 꾸준한 기도와 성독을 통해

하느님을 맛들임이 영성훈련의 요체입니다.

어떤 마음 있어야 하느님의 현존을 잘 실감하며 살 수 있을까요?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죽어서 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마음 단순하고 겸손한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하늘나라입니다.

 

마음에 따라 지금 여기가

하느님 나라가 되기도 하고 어지러운 세속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단순한 이들,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알고 보면, 마음 단순한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진정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기에

하느님의 말씀이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맺어주셨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이 맺어 주셨다는 믿음이 확고할 때

결코 쉽사리 이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계속 찾을 것이며

겨우 몇 년 살다 짝이 아니다 하여 갈라서지 않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꼭 맞아서 천생연분이 아니라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천생연분임을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 성격이, 마음이, 취향이 맞아서 살기로 하면 한 몸이 되기는 요원합니다.
살아도 여전히 불화할 것입니다.


서로가 ‘하느님이 맺어주셨다’라는 믿음이 확고하다면,

하느님 바라보며 살아감으로 한 몸의 일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격이 맞아서 일치가 아니라 하느님 방향이 같아야 일치입니다.

늘 서로 하느님께 맞춰가다 보면 서로는 저절로 맞춰져 가까워질 것입니다.


이는 비단 부부생활 원리일 뿐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공동체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 미사에서처럼

모두가 하느님을 상징하는 제대를 중심으로 마음을 모을 때

비로소 한 몸의 공동체이듯 말입니다.

 

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끊임없는 공동전례가 한 몸 성 요셉수도원 공동체를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형제들이 되어 살게 합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마치 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과연 얼마나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며 깨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인지요?
시편의 내용들 거의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의 고백이 아닙니까?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진정 시편의 고백들, 그대로 실감하며 고백하는 마음으로 읽고 듣습니까?


시편을 노래할 때든 성서를 읽을 때든

마음을 담아 하느님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고백하듯 할 때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하느님의 생생한 현존 안에서

‘참 나’로 생생히 현존하는 중에

한 몸 공동체를 이루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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