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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끄러운 일기 . . . . . .[정호승 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8 조회수815 추천수10 반대(0) 신고

 

 

 

 

몇 해 전 나는 예수를 미워한 적이 있었다.

 

나이 서른이 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내가 예수를 미워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내가 느낀 예수는 거대한 '사랑의 거인'이었다.

 

언제나 완벽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예수는

'너도 나와 같이 하라'고 내게 억압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예수가 싫었다.

 

용서와 사랑의 구체적 표상을 완벽하게 보여 주고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는 듯한 예수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화해의 삶보다

갈등의 삶을 주고

그 갈등을 통해 내가 지닌 사랑의 크기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아

나는 예수가 미웠다.

 

지난 83년 겨울 성탄 전야에 성세를 받으면서 나는 울었다.

"어머니,  하느님이 원망스럽습니다" 하고 내뱉듯이 말하곤 했던 내가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니..

그것은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오만 불손하기 짝이 없는 나를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마음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으며 크게 확대되어 오던 십자고상의 예수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호승군,  자네의 고통이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어디 나 만큼만 하겠는가?"

 

그 이후부터 나는 십자고상을 안타까이 우러러 보게 되었다.

여러 성당, 여러 곳에 있는 십자고상을 우러러 보면

십자고상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 되어 있는 것을 알수 있다.

 

나는 이런 여러 십자고상의 모습 중에서도

서울 중구 태평로 '성공회' 성당의 십자고상을 가장 우러러 보게 된다.

성공회는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면 점심을 먹은 뒤 잠시 찾아가곤 한다.

 

그 십자고상는 예수님을 바깥 바람벽에다 모신 탓인지,

새집 지붕처럼 생긴 비막이 지붕을 고상위로 지어 놓았는데

예수의 온몸은 비둘기 똥으로 온통 얼룩져 있다.

 

비와 햇빛을 피해 예수의 양팔위에 나란히 고개를 마주 대고

말없이 웅크리고 있는 성공회의 비둘기들,

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의 평화와 행복의 참모습이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온몸에 비둘기 똥을 뒤집어 쓰고,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힌 예수의 고통스러우나 또한 평화스러운 모습!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그는 오는 비와 눈을 묵묵히 맞으며

참으로 의연하다.

 

지난 가을  어느 날에도

나는 점심을 먹고 성공회 마당으로 걸어갔다.

자동 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마당가에 떼지어 노는 비둘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의 맑은 눈,

연분홍빛 가는 발목,

부드러운 고개짓들이 한없이 귀여웠다.

 

누가 과자 부스러기라도 던져 주면 그들은 날개 바람을 일으키며

마치 사랑 싸움이라도 하듯 그 과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한쪽 발목이 다른 발목보다 짧은,

발가락이 이지러져 발목 위로 한데 오그라든 비둘기가 한마리 보였다.

그는 회색빛 짙은 날개를 지니고 있었으며

다소 야윈듯한 인상을 주었다.

 

과자 부스러기를 향해 푸드덕 나는 비둘기들에 비해

그는 그저 뒤뚱거리며 동료들  뒤를 쫓아 갈 뿐이었다.

 

나는 그 다리가 부러진 상처를 지닌 비둘기가 꼭 내 자신 같은 생각이 들어

연민어린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한참 동안 동료들 틈에 끼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먹이를 찾아 쫓아 다니다가

포르르 날개를 펼치고 십자고상,

그 예수님의 머리위에 날아가 당당하게 편히 쉬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건방진 비둘기 좀 봐,

 감히 예수님 머리 위에 올라가다니!

 이 놈아, 네가 자꾸 예수님의 머리을 밟으면 가시관 때문에

 예수님 머리도 아프고 네 발목도 더 아프잖아 !'

 

나는 마음속으로 그 비둘기에게 말했다.

그러나 비둘기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그저 그 맑은 눈을 도도하게 뜬 채 예수님의 머리를 밟고

푸른 가을 하늘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님도 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의 그 고개를 떨군 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아,  그때 그 비둘기의 평화로움이란 !

아,  그때 그 예수님의 따스하고 한없는 사랑이란 !

 

비둘기 똥을 온몸에 묻힌 채

그 불구의 비둘기를 받아들이는 그날 그 십자가의 예수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상처를 내 스스로 예수님에게 보여 주게 되었다.

 

그동안 예수님은..

그를 미워한다느니, 어쩌니 하고 까불어대던 내가 얼마나 웃으웠을까?

 

나는 그동안 한 마리 절뚝발이 비둘기의 마음보다

더 거짓되고 오만했던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

 

 

- [가장 소중한 만남을 위하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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