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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한 사마리아인 - 명절 증후군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09 조회수882 추천수9 반대(0) 신고

 

 

<착한 사마리아인 - 명절 증후군>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사제와 레위인도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루가 10, 25-37)


  저는 40대 중반 주부입니다. 약간 퉁퉁한 편입니다. 속 모르시는 분들은 저더러 후덕하게 생겼다고 하시고, 어려서는 맏 며느릿감이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 대로인지 저는 맏며느리가 되어 시집살이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약점이 하나있습니다. 여자들의 날이 되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온몸은 다 쑤시고 아파 모든 식구들이 눈치를 다 챌 정도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웬만큼 나아진다고 했는데 저는 갈수록 더하니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용하다는 산부인과와 한의원에 쫒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 봤지만 괜찮다가도 몇 달 지나면 도루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만 되면 온 신경이 곤두서고 밥맛도 잃고 힘이 쪽 빠집니다. 조금 맹한 듯 한데 이 날이 겹쳐지면 사소한 실수를 자주합니다. 그렇다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저로서는 이 사실을 광고할 수도 없습니다.


  추석이 모래로 다가왔습니다. 아이쿠, 큰일 났습니다. 허리가 뻐근해져오고 머리도 띵하니 그날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얼른 약상자를 찾아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이틀 전에 깍두기는 담갔지만 오늘은  나박김치를 담구고 시장거리도 봐야하는데 생각만 해도 큰일 났습니다. 부침개와 생선전하며, 나물도 다섯 가지는 무쳐야하고 송편도 직접 빗어야합니다. 남들은 송편 정도는 떡집에 맞추거나 사다가 마련하는데 저희 집은 아직도 직접 찝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일하는 게 굼뜨고  요령부득이라고 마땅치 않아 하시면서도 큰며느리니 살림을 잘 배워야 한다며 하나하나 참섭하고 지적도 잘 하시는 편이십니다. 사실 제가 가끔 엽렵하신 시어머님 입장이 되어 보아도 저 같은 며느리 보면 속이 터질 겁니다. 그래도 시집살이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 졌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가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제게 짜증을 내실 때도 있습니다.


  추석당일 저는 집에서 차례음식을 준비하고, 집안 남자 분들은 새벽같이 시아버님과 시숙님 두 분, 남편 그리고 사촌 형님들은 산에 가서 성묘를 하십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또 차례를 드립니다. 그런데 산에서 돌아온 남편이란 작자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아니, 당신은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어. 산에서 제기를 찾으려니 향도 없고, 과도와 젓가락도 없었어. 또 컵은 작년에 쓰다만 것뿐이었잖아!”


   이 말에 시어머님도 “얘가 시집 온지 20년인데 아직도 그러냐?” 하시며 거드십니다. 아니 남편이라는 작자도 그렇지. 그렇게 못 마땅하면 직접 챙길 일이지. 왜 손님들 다 계시고 아랫동서들도 있는데 명절 첫 날부터 큰소립니까? 몸은 괴로운데 양 다리에서 힘이 쪽 빠져나갑니다. 그래도 억지로 참고 일해 봅니다.


   시어머님은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고 차례 상을 고이십니다. 동서들이 나서서 음식들을 나릅니다. 저는 미안한 마음에 그래도 웃음 띤 얼굴로 사과와 배를 깎고 제기에 담아 상에 올려놓다가 그만 너무 커다란 배 때문에 중심을 잃고 미끄덩하며 발목을 삐었습니다. 너무 아파 아얏!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들고 있는 제기에서 배가 굴러 떨어질까 더 염려되어 간신히 중심을 잡았지만 맨 위에 있던 껍질을 다 벗긴 배는 그만 마룻바닥에 굴렀습니다.  그 순간 시어머니 안색이 싹 바뀌셨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차례를 마치고 아침식사들을 마친 뒤 남자 손님들이 이 방 저 방 흩어져 고스톱 판을 벌립니다. 저는 발목이 아프고 저려 와도 앉을 틈도 없이 손님접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일이다, 커피다, 식혜다, 부침게다 부지런히 날랐습니다. 심지어 시어른들 재떨이 심부름까지 하였습니다. 그럭저럭 손님들 점심까지 대접하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발목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힘주어 걸었더니 제법 부어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 저녁은 아무렇게나 때웠으면 좋으련만 시어머님은 꼭 제대로 차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저녁상 머리에서 시어머님께서 기어코 한 말씀하십니다. “애야, 아까 너 때문에 십년감수했다. 그 큰 배가 차례 상 위에라도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냐? 너는 왜 그리 칠칠맞지 못하냐? 네 친정에서 그리 가르쳤냐?”


  그렇지 않아도 입맛도 없고 온몸이 다 쑤시고 발목마저 퉁퉁 부었는데, 오만 정나미가 다 떨어집니다. 꼭 그렇게 말하셔야만 직성이 풀리시는지……. 거기에 친정 얘기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아버님은 대학교 교수라는 분이 점잔만 빼고 아무 말씀도 안하십니다. 남편은 눈치만 살살 볼 뿐 끽소리도 못 냅니다. 게다가 아들 녀석은 고3 이랍시고, 입시에 부정이라도 탄 듯이 눈을 흘깁니다.


  추석 다음날은 그래도 친정 나들이를 허락하십니다. 마땅치 않아하는 남편이 툴툴거리는 얼굴 표정을 하며 자동차에 시동을 겁니다. 고3인 큰 아들 녀석에게는 외할머니 댁에 인사가자는 말도 못 꺼내고, 둘째 놈에게 같이 가자고 했더니  친구들하고 영화보기로 약속했다며 미리 내뺐습니다. 친정 집 앞 마트에서 그 웬수같은 커다란 배 한 상자와 아버지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 한통사서 들고 친정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어서 오라고 맞아 주십니다. 혹시라도 누가 될까하여 남편이 친정에서는 아무소리 말고 있으라는 종 주먹을 하기도 했거니와 나도 자존심이 있지 이제 와서 시집에서 있었던 일 가지고 고주 알 미주 알 나불대기도 싫어 그냥 건넌방에 누었습니다.


  나보다 나이어린 손위 올케가 “아가씨” 하며 방에 쫒아 들어오다가 내가 발목을 절뚝이는 것을 보자 “아가씨, 발목 다치셨어요?”하며 기어이 양말을 벗기고 발목을 살펴봅니다. 하루 지나면 좀 괜찮아 질줄 알았는데 어제 보다 더 부었습니다. 간호사 출신인 올케가 얼른 나가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냉찜질을 해줍니다. 그리고 이따가 탄력붕대로 감아주마 합니다.

  오빠와 연애할 때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집안 형편도 우리와 기울어 결혼에 반대했었는데, 그리고 결혼 후 한동안 직장에 나간다며 우리 엄마 아빠에게 손주 맡기고 출근해서 내가 그렇게 못마땅해 했는데,  그래도 착하고 쎈스있고  부지런한 것은 나보다 뛰어나, 친정 부모님께 잘 해드려 고마웠습니다. 오늘 따라 더 고맙고 옛날에 못되게 군것이 미안했습니다. 올케는 친정이 먼 관계로 명절이라고 친정나들이도 못합니다. 나라도 이웃에 살면 더 잘해 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고, 얼마나 친정 부모님이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괜스레 눈앞이 뿌옇게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예화를 읽으며 추석을 맞아 명절증후군이라는 계절병에 시달리는 이 땅의 주부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예화에 맞추어 나름대로 콩트를 엮어 보았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형제님들도 혹시 저와 같은 생각이시라면 집안 식구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말이라도 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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