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17 > 괴짜수녀일기 / 내‘방향 장애증’은 못 말려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0 조회수735 추천수4 반대(0) 신고
 

                  내‘방향 장애증’은 못 말려

                       


   나에게 타고난 재주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방향감각이 그렇게도 무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서남북조차 분간 못 하는 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 부둣가에 가서는 “동해 바다가 아름답지?” 하고 경포대 앞바다에 가서는 “참말 서해 바다가  넓구나!” 하고 말할 정도이니. 그런가 하면 딴 지방에 갔을 땐 동쪽 하늘을 가리키면서 “저녁놀이 참 아름답다”고도 하고,  서쪽 하늘을 보고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뿐이랴? 지하도로 한번 들어갔다 하면 어느 출구로 나와야 하는 건지 캄캄해진다. 그러니까 먼저 보이는 계단 쪽으로 나갈 수밖에. 그러다 보면 거의 네 군데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우왕좌왕하기가 일쑤다. 정말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걸려 할 짓이 아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방향 장애증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버스를 잘못 타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방향을 바꾸어 탈 때도 많지만 비슷한 번호를 잘못 보고 탄 적도 많고, 또는 먼저 내리던지 지나서 내리는지 해서 한 번에 가고 올 때가 드믄 편이다. 이렇듯 지하도와 버스에 대한 공포증까지 있지만 그렇다고 타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니….


   오래 전의 일이다. 세브란스병원에 가던 길이었는데.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는 눈을 감았다. 나는 버스만 타면 눈을 감는 습관이 있다. 차창 밖 거리의 어지러움과 소음에 대해 잠시나마 무감각해지는 이유도 있지만 이 시간을 이용해서 부족한(?) 잠을 좀 보충하자는 생각도 있다. 하여간 얼마를 졸다 문득 눈을 떠보니 연세대 담장이 눈에 들어 왔다. “연대앞 이에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서 ‘내려요“ 하고는 얼른 일어나 후닥닥 뛰어 내렸다. 벌 써 내릴 손님은 다 내려 버스가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차비를 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리면서 문간에 있는 안내양에게 버스표를 내던 시절이다. 내린 자리에서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뭐가 그리 많이 들었던지 조그만 지갑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참이라 뒤척거리다 겨우 꺼낸 지갑을 황급히 열고 보니, 이런! 버스표가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없다!” 하는 어이없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옴과 동시에 “오라이!” 하는 신호와 함께 버스는 획 출발해버리고 나는 빈지갑을 손에 든 채 멋쩍게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어느새 버스표를 다 써버렸군….’ 하긴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낭비(?)가 많았으니까. 때 아닌 공짜 차를 탄 셈이지만 어찌 석연찮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주님, 이 정도는 괜찮겠습니껴?”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Nuit d'Amour a Paris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