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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8 > 청승맞은 사랑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1 조회수853 추천수12 반대(0) 신고

                     

                           청승맞은 사랑



   얼마 전이었다. 회원들에게 보낼 편지를 위해 서서히 원고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마땅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강론을 쓰고 싶었으나 왠지 식상한 느낌이 들었고, 그렇다고 다른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찾자니 별로 튀는 사건이 없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이럴때는 약(?)이 어딘가에 있었다.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젊은 자매 중에 약간 멀미나는(?) 여자가 있는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영락없는 푼수지만, 때로는 그녀가 지닌 특유의 솔직함 때문에 사람의 눈을 번쩍 뜨이게도 만든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아무개냐?”

   퉁명스럽게 말을 건네자 저쪽에서 이내 반응이 왔다. 어머, 새해 초장부터 웬일로 전화를 다 하셨느냐, 복을 두 곱절로 받으시라는등 호들갑을 떨며 수선을 피우는데 순간, 공연한 짓을 했구나 하는 후회가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내키지 않는 질문을 살짝 던졌다.


   “회원들한테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뭔 내용을 썼으면 좋겠나?”

   그 자매도 소록도 후원회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뭐 좀 참고될 것이 있나 싶어 넌지시 물었더니, 자기한테 그런 상의를 다 한다는 내 처사에 크게 감격한 양, 그리고 이미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따발총처럼 거침없이 쏘아 댔다.


   “신부님의 애인 얘기를 쓰세요!”

   자기가 마치 애인이나 되는 것처럼 방정을 떠는데 갑자기 내 자신에 대해 혐오감이 일었다. “애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끊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수화기를 내려 놓았으나 그러나‘애인’ 얘기가 결코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선생이 되기 전에는 오직 하느님만이 애인이었고 선생이 되고 나서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또 내 애인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솔직히 없었다. 물론 섬마을 선생을 할 때 동네 영감들의 성화로 선도 여러 번 봤으나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였고 전혀 관심도 없었다.


   뒤늦게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기도하고 공부하며 봉사하는 그 모든 것이 날마다 새로운 의미를 지니면서 날 감격스럽게 했다. 그리고 마음에 기쁨과 은혜가 충만할 땐 세상 전체가 내 애인이었으니, 6년의 신학교 생활에서 나에게 ‘외로움’ 이라는 단어는 결코 없었다.


   그런데 막상 신부가 되고 나니 그때 비로소 눈에서 무엇이 들어왔다! 묘한 일이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요상한 그리움은 나를 수없이 괴롭혔다. 어느 땐, 불청객이 내마음의 안방을 턱 차지하고는 주인인 내가 “나가라!” 해도 나가지 않고 계속 버티는데, 어떻게 쫓을 재간이 없었다. 다만 시간만이 유일한 약이었다.


   사랑보다 아름답고 근사한 것이 없다. 사랑보다 멋지고 행복한 것도 없다. 어떤 형태의 사람이든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뺀다면 산다는 의미가 어디에 있고 믿는다는 가치는 또 어디에서 발견하겠는가. 사랑 때문에 눈물에도 기쁨이 있고 사랑 때문에 고통에도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랑이라고 다 곱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슬프고 구차한 것도 있으며 황당하며 부끄러운 것도 있다. ‘사랑’ 자체야 변함없이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감정을 갖는 자의 신분에 따라서는, 그리고 사랑하는 그 대상에 따라서는 영판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청승스러운 것인지...“

   한센병(나병)환자 였던 한하운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왜 사랑이 청승스러울까. 아마 시인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각설하고, 내가 청소년 시절에 한순간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 나는 그 여학생만 생각하면 항상 기분이 좋았고 세상이 늘 새롭게 빛나곤 했다. 그러면서 계속 의문이 된것은, ‘왜 하느님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그처럼 두근거리질 못하는가?’ 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금방 밝아지는데, 왜 주님 앞에선 그토록 오래 꿇어앉아도 “빛남” 이 잘 보이지 않을까? 빛남이 없는 사랑이야말로 진짜 청승이 아닌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도 청승스러운 것인지.... 예수님, 죄송합니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Nazareno Cruz Y El Lobo O.S.T - When A Child Is 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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