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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신부님을 돌려 주세요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최영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1 조회수823 추천수7 반대(0) 신고

    ♤ 우리 신부님을 돌려 주세요 ♤
    수학차 잠시 로마에 머물던 시절 일입니다. 지옥 같던 첫 학기를 겨우겨우 끝낸 저는 석 달 이상 되는 긴 여름 방학을 어떻게 하면 영양가 있게 지낼 수 있을까 궁리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제게 날아들었습니다. 나폴리 근교의 한 시골 본당에서 휴가를 떠나는 본당 주임 신부님을 대신할 사제를 한 명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용기 하나만 가지고 보따리를 쌌습니다. 다행히 따뜻하고 소박한 그곳 본당 신자들 사이에서 참으로 행복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사무원도 수녀님도 관리인도 없는 본당이었기에 들어온 헌금을 제가 직접 결산해서 교구청으로 가곤 했는데, 한번은 교구청 직원에게서 한 사제에 대한 감명 깊은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신부님이 한 본당에 부임하게 되었답니다. 그 신부님은 착한 목자의 삶에 지극히 충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성적으로 깊은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 신부님 강론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 언제나 감명을 주었습니다. 마음 또한 따뜻해서 신자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줄 줄 알았습니다.
    본당과 관할 구역 안에 소외된 사람들, 노인들, 병자들에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해서 틈만 나면 그들을 방문했습니다.
    조직력이나 통솔력도 뛰어나서 여러 신심 단체들을 구성했는가 하면, 겸손하게도 신자들 스스로 본당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소리없이 격려했습니다. 이렇게 덕스럽고 유능한 신부님으로 인해 모든 본당 신자들이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존경받던 본당 신부님이 갑자기 교구청으로 부임하라는 인사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신부님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워낙 능력이 뛰어난 신부님을 눈여겨보아 두었던 주교님이 교구 차원에서 대희년 준비 작업을 하기 위해 이 신부님을 교구청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비상사태 앞에서 즉시 대책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대책 위원회는 주교님을 직접 찾아가 인사 발령을 철회해 달라고 청해보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교님 뜻은 워낙 완강했습니다. 그렇다고 마을 주민들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부터 마을 주민들은 손에 손에 '우리 신부님을 다시 돌려주세요.' 라고 쓴 피켓을 들고 교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해서 오래도록 화재가 되었답니다.
    그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제 사제직에 대한 총체적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의 모델인 착한 목자의 삶을 완벽하게 재현한 '인기 짱' 신부님의 모습에 제 삶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착한 목자의 삶은 어떤 모습이겠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봅니다. 본당이나 수도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유능한 전문 경영인, 성서나 교리에 정통한 신학자, 세상에 지친 신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명강론가, 인품이 뛰어나면서도 기본적인 메너를 갖춘 인격자... 그 모든 것도 역시 착한 목자의 한 모습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그래, 바로 이거야!' 라고 생각되는 착한 목자상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을,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제입니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사제, 명령하기보다는 귀가 큰 사제, 거룩한 사제 그러나 편안한 사제, 많은 일보다는 꼭 해야 할 일을 정성껏 하는 사제. 이땅의 모든 사제들, 수도자들, 봉헌 생활자들이 제 갈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 저희 같은 수도자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은 무엇보다 기도입니다. 사제는 신자들의 기도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하느님께 받은 성소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기억하며 늘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저희 성소를 잘 가꾸어 나가도록 도와주는 기도야말로 저희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저희 수도자들은 저희들의 부족함을 예수님 때문에 기쁘게 견뎌냅니다. 오늘은 비록 뚜렸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우리 주님 얼굴을 거울 보듯이 대면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희망 때문에 이 숱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견뎌 내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최고의 가치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용감하게 한번 투신해 보기를 기대하며 그들을 수도자의 삶에 초대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고생한 것보다 몇 천 배의 상급을 받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때까지 중에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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