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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05) 그리움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1 조회수673 추천수9 반대(0) 신고

 

 

금년 추석은 참으로 우울한 추석이었다.

암 투병으로 얼굴이 많이 상한 여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왔고, 고모가 또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한다는 소식이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했다.

 

 

 

우리 친정은 아버지가 외아들이어서 사촌도 없고 그저 여자형제라야 동생 하나고, 고모 한 분 뿐인데 두 사람이 다 암에 걸려 수술시기도 놓쳐 항암치료만 하고 있으니 어쩐지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서글퍼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고모님과 나는 나이가 다섯살 차이이고, 나와 여동생은 네 살 차이다.

따라서 고모와 여동생은 아홉살 차이가 난다.

사회에서 십년 차이는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이다.

 

 

그러나 엄한 집안 풍속에서 서열이 엄연했던지라 고모와는 다섯살 차이지만 한참 어른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 성격도 셋 다 사근대는 성격이 아니라서 별로 다정다감한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두 사람이 어려운 병에 걸리고 보니 왜 그리 마음이 허전하고 슬퍼지던지.....

 

 

고모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일에 바느질 하고 다듬이질 하고 수를 놓으면서도 책을 많이 읽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한참 독서에 빠졌던 나와 책읽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모는 조카들을 위해서 참 많은 수고로움을 했다는 생각이다.

열일곱살 때부터 고모는,  방학이면 내내 고향집에 가서 머물렀던 조카들에게 가마솥에 빵 찌고, 감자 찌고, 옥수수 찌고 밥 해 먹이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화로에 인두를 꽂아놓고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다듬이질한 할아버지 광목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를  지으면서도 얼굴 가꾸는데도 열심이었다.

늘 보얗게 분을 바르고 눈썹을 족집게로 다듬으면서 어떠니? 내 코? 오똑하지 않니? 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던 고모.

 

 

하얀 이마에 눈썹이 그리지 않아도  초생달처럼 곱던 고모였다.

늘 기름을 발라 반드르하게 윤이 흐르던 머리를 하나로 땋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모의 머리는 모시바구니처럼 하얗게 돼버렸다.

 

 

삼십대에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조부님을 닮아 일찍 머리가 센 고모는 머리 염색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에 그냥 하얀 머리로 다녀 나와 몇십년은 차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십대 이십대에 그렇게도 미용에 신경쓰던 고모도 건강에 해롭다는 의사의 말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가 보다.

그러더니 결국은 그런 병에 걸리려고 그랬던가.

내 코 오똑하지 않니? 하던 그 코 속에 암이 생겨 코가 부어올라 있다.

노상 느이 아지미 인물은 만땡이야! 하시던 할머니 말씀처럼 보름달같이 훤하던 고모는 이제 코가 부어올라 얼마나 속이 상할까.

왜 하필이면 얼굴 한복판에  병이 생겼는지 안타깝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결혼해서 모두 뿔뿔이 헤어져 가끔 무슨 행사 때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옛날 고향에서 함께 하던 시간들, 추억들이 그리워지는 동기간이다. 어둑어둑한 여름밤의 마당에서, 때로는 달빛 하얗게 부서지는 달밝은 밤에 수건 돌리기, 강강술래 하던 추억이 그리운 사이다.

영악하지 못하고 나처럼 얼빵이같은 어린애가 동네에서 잘 살 수 있었던 건, 언니가 없는 나에게 고모가 든든한 빽이 되어주어서였다는  걸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다.

 

 

세월이 흘러 먼길을 걸어 온  우리 셋....

한솥밥을 먹으며 한집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 셋.....

애틋하게 그리워지는 추억이고 세월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 두 사람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모와 동생이 신앙을 가졌더라면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이 얼마나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는 걸 어떻게 그 두 사람에게 전할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지나온 멀고 먼 세월만큼이나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쓸쓸한 이 가을에 더욱 마음이 서글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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