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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녁묵상] 내 안에 나를 아는 그 분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1 조회수538 추천수4 반대(0) 신고





    내 안에 나를 아는 그 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처세술이나 인간관계 행동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안다고 하는 것은 매우 불확실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을 회의론이라고 합니다. 나는 확실하게 나인가? 이런 문제를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은 데까르트였습니다. 근대 합리주의의 아버지라고 하는 데까르트의 철학은 바로 나를 의심한 끝에 형성된 이성의 근원적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찾아내었습니다. 사물의 존재가 확실한가 하는 의심은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에 이르고 이 존재에 대한 의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므로 자기 존재는 확실하다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론 같지만 이성적 사유를 하는 자아의 존재만을 믿는 합리주의적 태도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나 자신만이 나를 알 수 있다는 막힌 사고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합당한 것만 진리였습니다. 성서에 나타나엘이라는 생소한 제자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막힌 이성을 뚫고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이 자기를 아는 것에 대해 회의를 품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나 외에 누구도 나를 알 수 없다는 사고는 결국 내가 승인한 진리만 존재한다는 막힌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알고 있다”는 태도에 의해 무너집니다. 나를 누군가 타인이 알고 있고, 나도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의 근원입니다. 절대적 진리는 그러므로 나에게 수용되어 내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자기 안에서 예수를 발견할 때까지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하고 의문을 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의문의 과정으로 그는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적 진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는 타자적 진리를 발견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나는 나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바로 타자적인 진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비라고 합니다. 신비는 바로 진리의 타자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내 안에만 갇혀있는 것에 한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타자적인 진리를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고 진리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안에 나를 아는 그 분을 발견합시다


                     

                     With solitary my wild g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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