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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9 > 컴퓨터와의 전쟁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2 조회수1,026 추천수12 반대(0) 신고

                  

 

                         컴퓨터와의 전쟁


   내가 컴퓨터를 처음 구입한 것은 1992년이니 햇수로는 제법 여러 해가 된다. 그러나 사용 방법을 몰라 한글 타자 연습만 몇 번 하다가 안식년을 핑계로 그 비싼(?)것을 신학생에게 그냥 넘겨주어 버렸다. 컴퓨터가 꼭 필요한 것인 줄은 알면서도 왠지 나는 기계 만진다는 것이 별 취미가 없었다.


   그러나 안식년 후에 컴퓨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래서 새롭게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그때부터는 서투르나마 각종 원고를 컴퓨터로 쓰기 시작했다. 그때 원고 초안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A4 용지에 글을 깨끗하게 빼낼 때의 기쁨은 실로 ‘감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에 대해 더 이상을 원치 않았는데 나중엔 불편함이 좀 생겼다.


   글을 쓸 때는 가끔 그림을 넣고 싶을 때가 있고 또 표를 만들 때가 있는가 하면, 저쪽 글을 이쪽으로 옮기고 또 이쪽 것을 저쪽으로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 재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해낼 재간이 없었다. 나중엔 책도 샀지만, 그러나 아무리 쳐다보며 궁리를 해도 그 방법을 몰랐으며 또 책 내용이 눈에 좀처럼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가, 신부님께 꼭 필요하다면서 노트북을 하나 사줬는데 그게 내 손에 들어오면서 부터는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사용 방법을 알아야 유용하게 쓰겠는데 어떻게 열고 닫아야 할 줄도 모르니,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도 결국은 스트레스였다. 결국 혼자서 끙끙 앓다가 나중에는 ‘무지개 가족’을 찾아갔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는 ‘무지개 가족’ 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는 벨기에 신부님이 장애자 20명과 함께 살면서 컴퓨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장애자들에게도 컴퓨터를 가르쳐 그들 스스로가 일어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곤 하시는데 소록도에서 몇 번 만난 인연으로 그리로 달려가 도움을 청한 것이다.


   내가 나이 쉰다섯이 넘어 수영을 배운 것도 순전히 그분을 통해서였다. 그분에게는 뭔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기필코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셨다. 그러니까 신체장애로 인해 자신에 대해 희망을 못 갖는 장애자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 주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는 거의 손을 못 대는 컴퓨터의 개발에도 혼자 자비를 들여가며  애를 쓰고 계셨다.


   내게 선생으로 배정된 자매도 역시 장애자였다. 그녀도 한때는 국가 대표 체조 선수였으나 목 부상으로 사지마비가 돼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우연히 무지개 가족에 들어와서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그리고 이젠 자립하여 콜택시 안내를 하며 다른 초보자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데 그에 대해서는 제법 노하우가 쌓인 자매였다.


   공부라는 것이 그랬다. 선생 앞에서 배울 때는 금방 뭘 좀 아는 것 같다가도 방에 돌아와 혼자 복습하려 하면 갑자기 머리가 콱 막혀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럼 당황해서 여기저길 닥치는 대로 막 누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컴퓨터에 계속 오류만 생겨 나중에는 혼자서 만들고 쌓아 놓은 스트레스 대문에 급기야는 아예 노트북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도 생기게 된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복습도 안하고 가만 누워 있자니 별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나는 것이었다. 소록도의 귀중한 시간을 다 팽개치고 예까지 달려온 결과가 이 모양인가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코 화를 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컴퓨터가 내게 잘못한 일도 없고 또 누가 나를 괴롭힌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부분들이 바로 그런 식이었다는 반성이었다. 이를테면,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일을 너무 성급하게 서둘고 도 내 식대로만 고집하기 때문에 결국 주님 안에 자주 머물지 못하고 밖에서만 빙빙 돌았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쥐뿔도 잘난 것이 없으면서 내가 너무 잘났기 때문 이었다!


    결국 나는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는데, 이젠 어제 틀린 것을 오늘 다시 틀린다 해도 조금도 슬퍼하지 않으며, 언제고 내가 컴퓨터 안에 내장된 작은 방 한 칸만이라도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은 버리지 않고 얌전하게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열흘 만에 다시 소록도로 돌아왔을 때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문이 열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Mouche de force froidement ma  oie sauv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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