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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자유에 의한 선과 악의 선택/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3 조회수75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10월 13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가 11,20)


If it is by the finger of God that I drive out demons,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upon you.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악령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영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상황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고 말씀하십니다

 

☆☆☆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논리가 없거나 억지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작정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악령을 쫓아내는 예수님께 악령의 두목 베엘제불 운운하는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솝 우화가 생각납니다. 양을 잡아먹으려고 이유를 대는 늑대의 논리는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도 상대편을 비판할 때, 근거와 논리도 없는 비난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의 논리와 합리화를 들이대지 않는지도 반성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판단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말씀처럼, 훨씬 좋을 것입니다.

 

 


 

                             자유에 의한 선과 악의 선택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善) 자체이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두고 매번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장)고 하셨는데, 왜 악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악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어린아이나 의인(義人)이 당하는 불행을 직면할 때 더욱 고조(高潮)된다.

 

   유사이래 사람들은 세상의 선과 악의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아왔다. 우리가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신앙의 결론은 세상은 선(善)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악이 존재하는가? 가톨릭신앙은 사실상 악의 독자적인 존재를 부인한다. 잘라 말하면 악은 선의 결핍(缺乏)이다.(토마스 아퀴나스) 그러므로 악의 존재를 인정하려들기보다는 선의 결핍을 안타까워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난 10월 1일 수호천사 축일에 천사론(天使論)을 공부하면서 보았듯이, 세상과 인간보다 먼저 창조된 천사들 중에서 순전히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동등한 존재가 되기 위해 교만과 허세를 부리던 천사들이나,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한 천사들이 타락하여 마귀의 무리가 되었다. 천사들이 하느님의 사자(使者)로 창조되어 하늘에서는 하느님을 보필하고, 땅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임무를 가졌다면, 마귀들이 그 반대의 행세를 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세상을 사는 인간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물리적으로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영적(靈的)으로 천사와 마귀의 세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마귀의 세력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자유의지가 약해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전부를 약탈당해 사람의 구실을 못하고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거나, 나쁜 악행을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저지른다면 "마귀 들림"을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복음서들이 왜 예수님의 구마기적활동에 그토록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바로 마귀 들린 그 사람에게 다시금 자유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며, 회복된 자유는 또다시 선(善)과 악(惡)을 두고 선택의 기개(氣槪)를 과시하게 된다.

 

   특히 마귀가 들려 귀머거리가 되거나 반벙어리가 된 사람들을 구마하여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은 단순히 마귀를 쫓아낸 일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된 사람에게 "말을 들음"과 "말을 함"의 기능, 즉 하느님 말씀의 경청과 발설의 기능(대화)을 되돌려 주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구마기적행적을 두고 반대자들이 예수님을 모함하려 든다. 반대자들은 예수께서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세력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마귀와 그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능력은 마귀자신들에게도 있고, 하느님에게도 있다. 마귀들이 다른 마귀들을 쫓아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마귀 들렸던 사람을 이전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기 위함이다.(24-26절)

 

   그러나 하느님께서 구마(驅魔)하심은 사람에게 인간본연의 품위와 자유, 그리고 말씀의 경청(傾聽)과 발설(發說)을 돌려주시기 위함이다. 이 일을 예수께서 하신다면 그는 하느님이시며, 그로 인해 이 땅에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20절) 이에 인간은 언제든지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선(善)의 편에 설 수도, 악(惡)의 편에 설 수도 있다.

-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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