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또 다시 살아계신 하느님을 ----- 2006.10.15 연중 제28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5 조회수59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0.15 연중 제28주일                                              

지혜7,7-11 히브4,12-13 마르10,17-30

                                                      

 

 

 

 

 

또 다시 살아계신 하느님을

 

 



또 다시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기도 시 저희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마음을 다해 노래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하며 노래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 청년의 물음, 바로 우리 모두의 물음입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무리 잘살아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증은 여전합니다.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찾아,

영혼의 갈증을 축이려 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그렇게 계명을 잘 지켜왔는데도

영원한 생명을 목말라하는 부자 청년입니다.


외관상 모범적 신자생활을 해왔음이 분명하지만,

자기(ego)로 가득 찬 겸손이 결핍된 부자 청년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구원은 ‘무엇을 해서’ 받는 업적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 주시는 은총의 선물임을 잊었습니다.

 

내 잘 살아서 내 힘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라,

하느님 자비로 구원 받는 진리를 몰랐습니다.


부자 청년의 모범적 삶으로 위장된

자기(ego)를 깨는 주님의 급소를 찌르는 요구입니다.

 

우리 모두의 자기(eog)를 깨는,

평생 우리를 자극하고 도전하는 요구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우리에게 이런 명령이 떨어졌다면

과연 실행에 옮길 자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주님이십니다.

부자 청년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으니,

많은 재물을 지닌 까닭이었습니다.

 

부자의 위선이, 진실이 폭로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섬겨오다 결국은 재물을 택한 부자 청년,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슬퍼하며 떠난 부자 청년,

마음은 참 씁쓸했을 것이나 자기의 부족하고 약한 모습을 발견하여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아마 주님이 목적하신 바도 이런 겸손이었을지 모릅니다.
이어 주님의 다음 말씀도 평생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예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백만장자 분들,

이 말씀 좌우명으로 삼아 방에 걸어 놓고 지내면 얼마나 유익할까요.

 

아마 이 말씀,

그들의 과욕을 견제하면서 자신들의 부의 선용에 대해,

자신의 구원에 대해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쉬울까요?


아닙니다.

가난 자체가 하느님 나라에 입장권이 되지 못합니다.

가난해도 마음은 탐욕과 질투로 가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좌우간 부자든 빈자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적절한 제자들의 물음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구원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전능에, 자비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참으로 마음 깨끗한 이들에게, 마음 가난한 겸손한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요,

깨끗한 마음이나 겸손한 마음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여 우리의 결론은 하느님께로 귀착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유명한 시편의 고백처럼,

밖의 재물이 많아 부자가 아니라

하느님으로 마음 가득할 때 진정 부자입니다.

 

하느님 현존으로 충만한

깨끗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지닌 자가 부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납니다.


이런 하느님 앞에서의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기도할 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할 때 지혜의 영이 내립니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집니다.

 

바로 이런 지혜를 소유할 때

진정 부자요, 세상 재물들 초개와 같이 여깁니다.

 

재물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재물의 주인이 되어 재물을 선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의 화신이자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하느님 사랑할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하느님의 선물이 마음의 순수요 겸손입니다.

 

더욱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고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습니다.

 

말씀에 맛들임이 하느님께 맛들임이요,

말씀을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이요 내적 변화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이런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이요 능력입니다.


우리를

순수한 사람,

겸손한 사람,

이탈과 무옥의 사람,

지혜로운 사람으로,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합니다.


결국 또 다시 살아계신 하느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부쩍 제가 피정 강론 때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첫째는 하느님 믿음,

  둘째는 건강,

  셋째는 돈,

  넷째는 일이라는 것이며,

  이 순서들이 절대 바뀌어서도 안 되고

  이 넷 중 하나만 빠져도 안 된다.”

 

또 하나는

“물보다 진한 것이 피고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고

  돈보다 진한 것이 하느님 믿음이다.

  그러니 자녀들이 재물 싸움 일어나기 전에

  하느님 믿음을 확실히 심어주라.”는 충고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체성혈을 모심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겠지만,

주님을 찾는 여러분들에게는

좋은 것 하나도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시편34,1)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