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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6 조회수845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6년 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This generation is an evil generation;
it seeks a sign, but no sign will be given it,
except the sign of Jonah.

(Lk 11.29)


 

제1독서 갈라티아서 4,22-24.26-27.31─5,1

 

복음 루카 11,29-32

 

‘내가 공부를 잘해서 1등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서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이 엄청난 부자였으면……. 그래서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다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어렸을 때 이런 꿈들을 한번쯤은 꾸지 않았을까요? 저 역시 이런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런 꿈들을 이루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큰 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들만이 주님의 놀라운 기적일까요? 생각하지도 못한 많은 부와 명예를 얻게 되고,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들 각자의 삶 안에서 주님의 기적과 표징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예를 한 번 들어보지요. 제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 4~5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본당신부님께서 저희 집에 가정방문을 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더니만 번쩍 들어 올린 뒤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 커서 신부님 되라. 신부님 되겠다고 말하면 내려주고, 말하지 않으면 안내려줄꺼야.”

그리고는 저를 내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4~5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제가 얼마나 겁이 났을까요? 잘 모르는 사람이 저를 들어 올리고 있는데, 더군다나 그 높이가 얼마나 높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결국 저는 울먹이며 신부님의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신부님 될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답변이 자라면서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떨치지 못해서 이렇게 신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셔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계신 신부님이지만, 이 신부님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저를 불러주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부르심이 바로 나의 삶 안에서 계속된 주님의 표징이며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주님의 표징과 기적은 얼마나 많을까요? 문제는 그 표징과 기적을 이상한 쪽에서만 찾는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시지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 예언자의 말 한마디로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이 모두 회개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며 표징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요나 예언자는 이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민족을 지배하던 니네베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멸망은 곧 자기 민족의 구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망까지 갔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대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몽땅 다 회개합니다.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는 그들이 말이지요.

바로 가장 큰 기적과 표징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큰 기적과 표징이며, 이런 것은 우리들의 삶 안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적과 표징을 찾아보세요.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지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아들아! 사랑한다('좋은 글' 중에서)



큰 사업을 하는 부자의 아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사막을 지나다가 추락했다. 아버지는 수색대를 조직해 며칠동안 사막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디가 추락지점인지, 또 아들이 생존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며칠 뒤 추락 지점을 발견했지만 비행기의 잔해와 비행사의 시체만 있고 아들의 시체는 없었다. 아버지는 일단 아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아들을 구출할 작전을 구상하며 기도 드렸다.

"하느님, 내 아들이 살았는지, 살았으면 어디에 있는지 저로서는 알수 없습니다. 저와 제 아들을 도와주시옵소서."

기도가 끝난 후 아버지는 수백만장의 전단을 사막에 뿌리기로 했다. 그러나 전단에 무엇이라 쓸 것인가 -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쓸 것인가, 무엇을 잡아먹고 사나운 짐승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를 써야 할 것인가- 난감했다. 고심을 하던 아버지는 결국 이렇게 썼다.

"아들아, 너를 사랑한다."

마침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기진맥진하고 좌절감으로 죽어가던 아들이 이 전단을 받아보게 되었다. 아들은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아빠는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버티자' 하며 힘을 내었다.

얼마 후, 아들은 수색대에 의해 구출되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믿기에 극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입니다.

 

 

Just as Jonah became a sign to the Ninevites,
so will the Son of Man be to this generation.
At the judgment
(Lk 11.30)


 

 
When the love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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