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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 1 > 심 할아버지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6 조회수840 추천수9 반대(0) 신고

                      

 

 

                            심 할아버지

                             

   서생리에서‘심 할아버지’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분은 유명하다. 본래 ‘김병식’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치료실 간호들과 주위의 사람들은 ‘심부름 할아버지’, 또는 ‘심 할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이유는, 심 할아버지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도, 그리고 별 자질구레한 잡다한 일도 당신이 안하고 꼭 남을 시켜 먹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에도 치료실에는 심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보나마나 그 시간에는 당신 축사에서 돼지에게 밥을 주시거나 아니면 마늘밭에 가서 일을 하고 계실 것이 분명했다. 할 수 없이 김 간호는 오후에 치료 약품을 챙겨 심 할아버지의 집을 들르니 할아버지는 이미 그렇게 될 줄 알고 딱 폼을 잡고 기다리고 계셨다.


   ‘날마다 힘든 일하시면서 치료를 소홀히 하시면 어떡 해요!“

   약간 짜증이 난 목소리로 심 할아버지를 쳐다보니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히려 다른 문제로 흥분하고 계셨다.

   “응, 김 간호 왔어? 시상에 우리 아들놈한티서 펜지가 왔당께. 요것 쪼까  읽어줘. 당최 눈이 침침해서 말 이시….”


   편지를 읽어보니 부산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오는 목요일에 심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편지를 다 듣고 나시자 심 할아버지가 호들갑을 떠셨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쩐 디야! 목요일이면 이틀밖에 남지 않았구먼. 김 간호! 나 쪼까 도와 줘!”


   갑작스런 재촉에 김 간호는 난감해졌다. 다른 분들도 찾아 치료를 해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했다. “할아버지, 지금은 제가 좀 바쁘니까 내일 도와 드릴게요.” 조심스레 약품을 챙겨 일어서려는데 심 할아버지는 김 간호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나 김 간호를 그렇게 안 봤는디, 이제 본께 영 못 쓰것네! 학생 간호 때는 치료도 잘 혀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더니만 나가 늙었다고 괄시 하는감!” 그 말씀에 기가 팍 죽은 김 간호는 얼른 약품을 내려놓고 팔을 걷어   부쳤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의 방 안은 한 사람이 몸 누일 공간 정도만 비어 있을 뿐 온갖 물건들, 옷, 밥상, 그릇, 통조림, 음료수병, 대추, 밤, 반찬그릇 등으로 잔뜩  널려 있었다. 김 간호는 흩어져 있는 옷가지를 모아 대충 빨아 널고 이부자리도 내다 말렸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왔을 때 김간호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게 되었다.


   벽에는 가족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걸려 있는데 어린애를 안은 부인과 젊은 남자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 할아버지의 아들 내외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내려 먼지를 턴다는 것이 그만 액자를 떨어뜨려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


   그때 심 할아버지가 성난 얼굴로 쳐다보았다. “도와주기 싫으면 말로 할 것이지, 남의 귀한 사진을 깨는 법이 어디 있당가!  다음부턴 일 안 시킬 테니깐 어서 가 보드라고!“   퉁명스런 할아버지의 말을 뒤로 하고 나오는 김 간호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했다. ‘온갖 궂은일은 이것저것 다 시켜먹고 그까짓 유리 하나 깼다고 닦달을 해!’ 간호도 성질이 났지만 그러나 하나 밖에 없는 액자를 산산조각을 냈으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액자일로 고민하던 김 간호는 육지에 나가 새 액자를 하나 구한 뒤에 심 할아버지를 찾아 가다가 마침 옆집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김 간호를 가로 막았다.


   “김 간호! 심 할배 찾아왔는감?”

   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가 다음 말을 이었다.

   “그 영감, 맴이 안 좋을 것 인디….”

   김 간호는 지레 겁이 나서 얼른 대답했다.

   “저 때문에 화가 나셨나 봐요?”

   그러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김 간호 땜시 그렁게 아니고, 어저께 부산에서 산다는 아들네가 왔는     디 절만 한 자리하고 나서 그 영감 돈이랑 저금통장이랑 챙겨서 냉큼 가     버렸디야, 글쎄!”


   할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김 간호의 맘이 더 우울해졌다. 그때 심 할아버지는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계셨다. 간호가 다가가면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저번 일은 정말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김 간호는 진심으로 할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그러자 심 할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아니여! 아들놈이 온다니께 나가 정신이 없어서 김 간호 한티 괜한 역정을 냈는 갑서. 김 간호가 맴 풀어!“


   심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간호의 맘이 한결 편안해졌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는 다른 주문을 또 하셨다. “아차, 그건 그렇고 나가 지금 마늘밭에 좀 가 봐야 쓰것는디 요것 좀 해줘. 이 옷하고 양말 몇 짝만 꼬매 줘. 알았제? 내일 까지여!” 몽당발로 찌웃등 거리며 밭으로 사라지는 심 할아버지를 보고 김 간호는 갑자기 볼멘소리를 했다.


   “심 할아버지는 다른 간호들은 다 놔두고 꼭 나만 부려먹더라!”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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