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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6) 오우, 저를 믿지 마세요 / 박보영 수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6 조회수763 추천수6 반대(0) 신고

 

 

 

                   오우, 저를 믿지 마세요.

 

 

                                   글쓴이 :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 박보영 수녀님

 

 

10월 셋째주 연중 제28주일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17-30)

 

 

 

그는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에 낙담하고 슬퍼하는 청년,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키며 반듯하게 살아왔으면서도 영원한 생명에 목말라하는 이 청년이 기특하다.

부족한 것 하나 없이 다 가졌다고 보이는 부자 청년이, 오직 하나 '영원한 생명' 에 허기를 느낀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찌른다.

 

이 청년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들,

구원과는 관계없는 나의 결핍을 겉꾸미기 위한 치장품들을 구하며

허다한 기도시간을 분심하며 흘려보냈던가.............

 

두 손 모은 채 나 역시 똑같이 그분 앞에 무릎 꿇었건만,

내 입에서 나오는 바램들은 청년과 너무나 다른 것인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끝내 가진 재산을 버리지 못하고 쓸쓸이 돌아가는 청년의 뒷모습에

'아이고 저런....... .'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낸다.

 

그깟 물질!

용감히 버리고 훨훨 자유롭게 따라 나서야 되는데,

바로 예수님 앞에서 그냥 돌아서는 그 장면이 두고두고 안타깝다.

 

그러니 너무도 가진 것이 적은 내가 겨우 몇 푼의 그것조차 포기하지 못하고 움켜쥐는 모습은 비통하다 못해 차라리 헛웃음마저 터져 나온다.

 

잘 정리되고 가다듬어진 하루의 성찰보다 한 순간에 문득 내 이마를 치고 가는 편린들,

 

'내가 이렇게 치사하구나,

 내가 이렇게 탐욕스럽구나,

 내가 이렇게 질투심이 대단하구나.....  .'

 

하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발견이 수도생활 십수 년에서 건진 알짜배기 수확들이다.

 

오늘 성경 말씀은 나에게

 

"그깟 물질! 하고 외치기 쉬운 구호로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고 조용히 내 자신의 바닥부터 들여다보아라."

 

하는 것만 같다.

 

"차라리 근심하며 쓸슬해하는 이 청년은 정직하구나....

 나는 참 시끄러웠구나...."

 

중얼거리며 얼굴 붉어진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양파껍질 까기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면서도 동시에 점점 더 자유로워진다.

 

공소미사를 가면서 신부님 제의를 빠뜨리고 가질 않나,

어느 날은 아예 공소미사가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은행열매를 주우러 가로수 길을 헤매다가 혼자 공소에서 돌아오시는 신부님을 길거리에서 맞닥뜨리질 않나...

 

'아뿔사, 세상에 내가 이렇구나.... 이 정도구나....  .'

 

도망갈 길 없이 적나라하게 나 자신을 보여주는 무수한 체험들을 통해 드디어 어느 날 기쁘고도 통쾌하게 깨닫는 것이다.

 

"오우, 저를 믿지 마세요.

 저 자신도 저를 안 믿어요.

 오직 하나,

 하느님께서 손을 안 잡아주시면 이 문지방도 제대로

 못 건너는 하찮고 무력한 존재라는 것만 알아요!"  라고.

 

이렇게 하나씩 나의 겉껍질을 벗겨내면 드디어 나의 양파는  무(無)가 될 것이다.

더 버릴 것도 없이 홀가분하게 주님을 따라 나서는 자유로운 제자가 될 것이다.

 

                        <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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