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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입니다. (펌)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6 조회수551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입니다


  
  북한산. 효자비에서 시작된 산행이 마침내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의 작은 봉우리에 섭니다. 백운대를 바라봅니다. 백운대를 오를 수 있을까. 마치 꿈을 꾸듯 백운대를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 내가 서 있는 그 봉우리에 한 여인이 누워 있습니다. 내 생각을 알아들었는지 그녀는 다짜고짜 자기를 따라 오라 합니다. 자기를 따라가면 백운대로 오를 수 있다고. 앞서가는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바위를 타고 얼마를 걸어갔을까 그녀가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는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고 여겨지는 바위와 바위가 맞닿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갑니다. 길 아닌 길, 참으로 신기한 길을 따라 몸을 굽힙니다. 호랑이굴입니다. 먼발치에서 볼 때는 바위와 바위가 포개져 있어 틈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는데, 막상 가까이 와서 보니 바위와 바위가 맞닿은 그 자리에 틈이 있습니다. 틈! 틈이 있습니다. 따라 들어오라는 그녀의 몸짓에 따라 호랑이굴 그 바위틈 안으로 몸을 집어넣습니다. 몸을 비틀며 손은 벽 위를 더듬고 엉덩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기어들어 갑니다. 비 오듯 땀이 쏟아집니다. 배낭이 걸려 나아가지 못하니 배낭을 벗어 앞쪽으로 넘긴 후 부딪히고 긁히고 그렇게 내장처럼 꿈틀꿈틀 연이어 펼쳐진 호랑이굴 속을 더듬더듬 훑어나갑니다. … 호랑이굴 …. 얼마를 헤맸을까 마침내 입구가 보입니다. 굴을 빠져나옵니다. 밝은 세상, 그렇게 호랑이굴에 머물다 세상으로 나옵니다. 엄마 뱃속에서 아홉 달을 머물다 울음 울며 나오듯 그렇게 세상으로 나옵니다. 새로 태어납니다. … 다시 암벽을 올라 백운대로 오릅니다. 그런데 홀연히 그녀는 떠나갑니다.

   “신부님, 저도 천주교 신자입니다. 세례명은 안젤라고요. 언제 또 만나겠지요.” 그리고는 사라졌습니다. 안젤라?! 천사! 그녀는 천사였습니다. 


 호랑이굴. 호랑이굴을 발견하고 호랑이굴 속에 머물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랬습니다. 호랑이굴에서 대림을 배웠습니다. 대림 그것은 초탈입니다. 초탈은 일생생활 가운데서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주시하고 다잡는 마음의 훈련입니다. 자기애와 자기 집착을 떠나 사물을 하느님의 빛 아래서 더 순수하고 고귀하고 아름답게 대하며 사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사물들이 마음에 있되 마음은 사물들에 두지 않는 무념(無念)․무주(無住)․무상(無相)의 훈련이며, 아집을 떠나 무심(無心)․무사(無事)․무욕(無欲)으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 안에 호랑이굴이 있습니다. 북한산에 호랑이굴이 있듯이 내 안에 호랑이굴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호랑이굴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호랑이굴인 내 영혼에 오늘 말씀이신 하느님이 들어오십니다.대림을 알리는 첫 날인 오늘,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입니다. 오늘, 바로 오늘, 내 영혼에 말씀이신 하느님이 육화하십니다. 참 뜻깊은 오늘입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시인 구상의 詩「오늘」 전문.)



  그러나 여전히 내 영혼은 잡다한 피조물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애착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애착에서 벗어나 일탈에서 오는 내적 자유를 살아야 합니다.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에게서 초탈을 배웁니다. 초탈은 번잡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내적 고독을 갖는 것입니다. 어디서 누구하고 있든지 간에, 사물들과 사람들 서리 그 일상 속에서 내적 자유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초탈을 살아야겠습니다. 초탈을 살 때 내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불꽃이 하느님과 하나 되면서 내 영혼 안에 말씀이 탄생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탄생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태어나십니다. 

                                                                 민성기 (요셉)신부  드림

 

 

주: 이 편지는 민신부님이 생전에 어느 교우에게 보내신 편지랍니다.

     부천 상동성당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가브리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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